19살에 6남매의 맏이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60평생 농삿 일을 손에서 놓으시지 않으시고 우리 가족들을 위해 하루하루 땀 흘리며 사시는 우리 엄마. 당신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자식들에게만큼은 풍족히 먹이고, 공부 잘 가르쳐 보겠다며 내가 12살 때 엄마랑 떨어져 동생과 도회지로 보내고...지금까지도 시골에 남아 아직까지도 쉬지 않고 농삿일 하시며 때마다 바리바리 싸서 자식들한테 넉넉히 보내주시는 우리 엄마.
얼마 전엔 도토리묵가루, 감자전분, 알밤, 단호박, 찹쌀가루, 양파, 마늘, 양배추...잔뜩 싸서 아버지 편에 보내주신 우리 엄마. 지금도 도토리랑 밤 주우러 다니신다고, 보내준 밤 다 먹으면 또 보내주신다고 오늘도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직도 냉장고엔 엄마가 보내주신 밤이 그대로인데... 지난 화요일 저녁때 친정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마침 작은 아들 시현이가 얼른 전화수화기를 받더니만 연신..네, 네, 네, 대답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친정엄마가 손주 새끼 목소리 듣고 싶다고 전화를 하셨다고. 전화 받는 아이 옆에서 할머니 식사하셨어요? 라고 여쭤보라 했더니. 녀석 쑥쓰러운지 연신 깔깔깔 웃기만하고, 수화기 너머에서도 덩달아 엄마의 웃음소리가 전해져온다. 얼른 수화기를 아이한테서 바꿔 간단히 안부 여쭙고 나니 ‘엄마의 순대’가 생각이 났다. 마침 잘 됐다 싶어 바로 순대 요리법을 여쭈어 보기로 했다.
나 : 엄마 순대 또 만들었다며? 엄마: 언니가 그러지? 순대 세 갈래 싸주었는데 안주던? 나 : 순대 먹었다고 자랑만 하지 주진 않던데, 먹성 좋은 그 집 식구들이 다 먹었겠지 뭐. 엄마 잠깐만!(잽싸게 수첩이랑 볼펜을 집어 들고 와서는) 엄마 근데 순대 어떻게 만들어? 엄마: 묵은 김치 씻어서 그냥 저기야 칼로 잘게 다져서 젖국 쪼끔 치고, 겨란 깨고, 두부하고 잡채도 삶아서 송송 다져야 돼. 그리고나서 피, 내포피에.... 나 : 내포피가 뭐야? 엄마: 돼지피가 있어. 어흐 내포창자가 길어. (순대속) 넣기 좋게 토막토막 잘라서 닦달하고 내포는 뒤집어서 주물주물 해야돼.그래야 냄새가 안나지, 구렁내가 안나. 그리고 나서 바로 거죽으로 바로 뒤집어서 또 닦달해. 짧게 내 팔뚝만하게 짧게 토막내서 닦달해서 (순대속을) 넣으려면 아랫도리를 묶고 나이론 줄, 고추띠 매는 줄로 묶으면 돼. 없으면 실로 묶고(순대속을 넣을때) 병목아지를 넣고 순대(속)를 넣으면 돼 나 : 병목아지는 어떻게 잘라? 엄마: 아부지가 할줄 아니까.너는 그냥 애들 음료수병을 가위로 자르면 돼 왜? 허게? 나: 아니, 성현아빠가 장모님 순대 잘 만든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하니까 한번 물어보라고해서... 엄마: 껄껄껄껄...순대 닦달하려면 오라(오래 걸려). 똥을 뒤집어야 돼. 토막자른거 거 죽을 뒤집어서 밀가루를 넣고 주물주물 해야돼. 두서너번 해야돼, 그러고나서 물에 담궈. 저녁에 담궈서 아침에 다시 휑궈 그래야 돼지냄새가 안나지, 돼지 똥냄새 나 : 그렇게 모두 하고 찌면 돼? 엄마: 어. 어휴, 접대(추석때) 아빠가 (정육점에서) 내포 가지고 오다가(우리집 근처) 언덕아래 수문께 전봇대에 차를 들이받았지뭐냐, 게이트볼장에서 술 한잔하고 운전하다가. 왜 순대 안한다고 하고 왜 하냐고 차만 망가졌다고 으찌나 욕을 하던지 욕 대지끈 먹었다. 나 : 아빤 다치진 않았고? 엄마: 아니 차문짝만 찌그러졌다. 으휴, 차는 (동네에서) 새차로 나중에 사놓고 하두 들었다놨다해서 (남들보다) 흔차가 다 됐다야. 순대 짜면 맛없어. 고모네 두갈래, 언니네 세갈래, 새아이네 친정간다길래 두갈래 보내고, 다 찢어발라서 먹을게 없다. 언니가 안주든? 나 : 안줬다니까. 먹었다고 자랑만 하고.. 엄마: 네가 하긴 힘들어 다음에 오면 해줄게. 너네 아빠가 전화 오래한다고 옆에서 뭐라한다. 알았다 어서 저녁먹어. 나 : 네~ 엄마: 바로 전화기 뚝! 수화기를 내려놓으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어지럽게 적혀있는 엄마의 순대요리 비법을 다시금 알아볼수 있게 정리하고나니. 그동안 엄마가 우리에게 해준 정겨운 음식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가마솥 누룽지 위에 설탕 솔솔 고소한 맛, 엿기름 삭혀서 만든 얼음동동 시원한 단술(식혜), 시루에서 몇 일동안 물 부어가면 길러주신 콩나물, 직접 만들어주신 따끈따끈한 두부를 간장에 포옥... 추운겨울 신김장김치 송송 썰어 얹어 비벼주신 비빔국수, 간식으로 밀가루에 흑설탕 넣어서 기름에 튀겨주신 호떡, 햇볕에 걸어놓아 말려 놓은 무말랭이와 시래기, 들과 산에서 캔 온갖 나물반찬들. 아빠가 바다에서 잡아온 망둥이를 꾸떡꾸떡 말려서 맛나게 구워주시고..바지락 잡아서 시원한 바지락 국물내고, 아빠가 잡아오신 싱싱한 숭어회 뜨고, 바닷나무제 캐서 향기나는 나물 먹고, 산에서 주운 밤과 앞마당 대추나무에서 따낸 대추 섞어서 약밥해주시고. 한여름 시원한 오이짠지와 무짠지 국물 후루룩~
이 순대 맛을 보면 일반 순대는 아무것도 아니다. 몇해전에 돌아가신 친정할아버지께선 일반 사먹는 순대는 무신 비닐로 씌운것같아 맛없다고까지 하셨다. 처음 먹어본 비유가 약한 사람은 냄새난다고 할지 몰라도 얼마나 쫀득쫀득 구수한 맛이 나는지..순대국으로 끓여서 밥한그릇이면 뚝딱.예전 시골동네에서 큰잔치 치르면 돼지 잡아서 잘 만들어 먹었던 순대국과 순대다. 지금은 아바이 순대(?) 체인점에서 비싸게 조금 맛볼수 있을정도인데, 아뭏든 정말 향수가 그대로 묻어있는 맛있는 울엄마 순대이다. 황은미님은 능곡도서관 엄마독서모임 '책이랑 소풍가요'(http://cafe.naver.com/ljeun0403)의 대표 입니다. 이 글은 컬쳐인시흥에도 실렸습니다. <저작권자 ⓒ 국제기독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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