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쫒아옵니까? 숨 좀 돌리며 삽시다

이정심 | 기사입력 2011/04/30 [16:04]

누가 쫒아옵니까? 숨 좀 돌리며 삽시다

이정심 | 입력 : 2011/04/30 [16:04]
햇볕을 쬐며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배를 땅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 하품을 하는 백구와 같이 게으른 생활이 체질에 맞는데 난 그러질 못하고 늘 할 일에 쫓기며 산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친구에게 보내던 편지를 멈춘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전화번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 안부를 할 느긋한 마음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좋은 사람과 소소한 얘기를 하고 고민을 주고받을 기회가 부쩍 줄어들었다.
 
아이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시기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는데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물 받을 양재기 갖다 놓느라 허겁지겁하는 형상이다.

‘냉장고에 있는 도라지 무쳐야하는데, 짠지도 해먹어야하고, 겨울 옷 정리는 언제 하지?’ 이리 저리 미루고 있는 일 더미를 떠올리며 조바심이 난다.
 
‘지금 여기’는 말할 수 없이 번잡하다. 내 안에 내가 있어야하는데 일상이 빠르게 돌아가다 보면 내가 보이지 않는다. 방에 들어가서 ‘내가 여기 뭣 하러 왔더라......’ 생각이 나지 않을 때의 머릿속처럼 진공상태인 나란 존재에게 지금 뭐하고 있는가 묻는다.

문명은 우리에게 잉여의 시간을 허락한다. 버튼으로 작동되는 집안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세탁기가 있어 빨래하던 시간이 남고, 간편 식품을 사용하고 가끔 사먹다 보니 부엌에 묶여있는 시간도 단축되고, 우월한 교통수단(자동차)을 이용하니 왕래에 소요되는 시간도 싹둑 줄었다.

이 늘어난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나? 자기 관리에 엄격한 사람을 빼고는 TV를 보거나 인터넷 기사에 낚이고 쇼핑을 하게 될 거다.

문명의 혜택으로 오지랖이 넓어져, 나처럼 사람 사귀는데 소극적인 아줌마도 몇 백 명의 전화번호를 저장 해 놓고 있다. 가까운 어느 선배는 번호저장 한도가 넘쳐서 고장 나지 않았지만 휴대전화기를 바꿨다고 했다.

2010년 1월 영국의 <데일리 메일>은, 영국 옥스퍼드대의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 교수가 신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인류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뇌로 유지 가능한 친구는 최대 150명 정도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고 보도했다. 친구관계 유지의 기준은 1년에 한 번 이상은 연락을 하거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삼았다고 한다.

‘일촌’ 과 같은 온라인(on-line) 친구가 천 명이 넘는다는 사람들의 인터넷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150명가량의 사람들과 실질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던바 교수는 주장했다.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는 업무와 관계없는 내용으로 150명과 한 번이라도 유쾌한 한 두 마디를 건네기 어렵다. 나 역시 이사람 저 사람에게 보자고 말을 흘렸지만 공수표였음이 속을 거북하게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집안 어른, 언제 한 번 만나자고 다짐한 친구를 단기간 내에 마주볼 수 있을 거라고 이제는 기대하지 않는다. 꼭 보자는 말이 그 순간에는 진실 된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복잡한 현재의 뇌 상태와 처리해야 할 목록 앞에서 진실한 마음은 증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운 사람은 그리워만 해야 하고, 꼴 보기 싫은 인간이어도 생업과 관련되면 매일 대면을 해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먹고 사는 일이 엄중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보니 늘 마음이 쓰이는 친척, 혈연은 아니지만 가족에 버금가는 분, 따뜻한 친구들을 어찌어찌 겨우겨우 한 번씩 보면서 사는 게 나의 현실이다.

비무장지대 남쪽에 사는 사람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백수도 나름대로 바쁘다. 몸은 책상 앞에 짐짝처럼 꼼짝 않고 있지만 세상의 잡다한 얘기가 뉴스라는 명목으로 귀에 들이친다. 때론 불필요한 얘기들이 너무 많이 들려와 귀를 막고 싶다. 사유할 시간을 달라는 외침은 정보의 물살에 순식간에 흔적도 없어진다. 쓰레기 같은 정보생산자는 포장을 하고 우리는 알면서도 혹하고 만다. 이런 정보를 모르고 있으면 대화에 끼지 못하는 장면은 애나 어른이 다를 바 없다.

평생교육의 시대라니까 취미와 자기 계발도 해야 한다는 트렌드에 따라 동호회나 문화센터 한 두 곳에 발을 걸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종교는 벅찬 의무를 부여하고 회합과 봉사를 권한다. 어디든 소속되면 과제가 주르르 기다리고 있다. 사방에서 나에게 들어온 것을 소화할 시간을 줘야하는데 네가 성취한 것은 무언지 유형의 증거를 바로 제시하라고 한다.

 

잎을 떠나보낸 나무가 싹을 틔우기 전 쉬듯이 우리도 쉬어야 한다. 하지만 ‘죽기 전에 읽어야(해야) 할 00가지’류의 책이 앞 다퉈 출판되고, 매체에서는 볼거리, 먹을거리, 할 거리를 계속 내민다. 그 통에 쉼 없이 무엇을 배우고 해봐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 몸 어딘가에 새겨져 버렸다. 가만히 있으면 어디에도 없는 존재로 떨어질까 두려움을 느낀다.

몸이 쉬고 있으면 정신에 곰팡이가 스는가? 아니 반대다. 한 장의 일기를 쓰고 한 편의 시를 읽을 짬을 내지 않는 삶은 중심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은 윤기가 없어지리라. 유배지에서나 감옥에 있으면서 많은 독서를 하고 영롱한 창작을 한 인물이 많다. 나를 위해 사회를 위해서도 세상과의 일정한 단절이 필요하다. ‘누가 모르나요? 말처럼 안 되니까 탈이지!’ 라고 누군가 쏘아붙이면 ‘그래도 쫓기며 살지는 말자’고 하겠다.


 
이정심님은 '참교육학부모회' 안양지회장 입니다. 글은 <안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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