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이 관광지로 변한 동양최대 ‘똔네삽 호수’

'기아대책 후원 군산 이사회 2011 비전트랩' 스케치 (4)

조종안 기자 | 기사입력 2011/08/28 [06:49]

전쟁의 상흔이 관광지로 변한 동양최대 ‘똔네삽 호수’

'기아대책 후원 군산 이사회 2011 비전트랩' 스케치 (4)

조종안 기자 | 입력 : 2011/08/28 [06:49]
▲ 호수 면적이 캄보디아 국토의 1/10 정도 된다는 ‘똔네삽 호수’ 선착장 풍경     © 조종안


비전트랩 둘째 날(4월 25일). 첫날 묵었던 시엠립(Siem Reap) 외곽에 있는 ‘앙코르 홈 호텔’에서 ‘똔네삽 호수’까지는 버스로 30분 가까이 걸렸다. 동양에서 가장 큰 ‘똔네삽 호수’는 국제 관광지로, ‘앙코르 왓’과 함께 캄보디아의 랜드마크란다. 

버스에서 내리니까 시원한 강바람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열대의 나라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시원했다. 석미자 선교사는 “평소에는 무척 더운데 참 시원하다.”면서 “여러분이 비전트랩을 시작하는 오늘은 축복받은 날”이라고 했다.

일행(13명)은 곧바로 표를 구입해서 동력엔진이 달린 목선에 올랐다. 요금은 1인 7달러. 배에는 선장과 눈망울이 예쁜 남자아이가 동승했다. 나이는 열한 살, 초등학교 4학년으로 이름은 ‘희어’라고 했다. 맨발에 땟국물이 흐르는 옷차림이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 상앗대처럼 생긴 장대로 배가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는 ‘희어’     © 조종안


발동이 걸리니까 희어가 얼른 일어나 상앗대처럼 생긴 장대로 배를 힘겹게 밀어냈다. 똔네삽 호수는 우기(5월~11월)에는 메콩강 강물이 역류해 제주도의 네 배로 불어나 바다처럼 넓어지는 거대한 호수란다. 평소엔 깊이가 1m 정도지만 물이 불어나면 6m가 넘는다고 했다. 

배가 방향을 잡자 희어는 일행들 등을 두드려주고 팁을 요구했다. 나에게도 오더니 등을 두드렸다. 간지럽기만 했지 시원하지도 않았다. 팁으로 1달러를 건네주면서 이름을 써보라고 했더니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기 이름을 쓸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희어는 부모가 있으나 모두 실업자라고 했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면서 학교 다닐 나이에 밥벌이에 나선 희어가 안쓰럽게 보였다. 그래도 표정이 밝아 다행이었다. 희어를 통해 캄보디아 국민의 빈곤과 낮은 교육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 간단한 살림을 보트에 어디론가 이동하는 똔네삽 호수 주민.     © 조종안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똔네삽 호수는 보기엔 탁하지만 메기와 장어 등이 사는 1급수라고 했다. 호수 주변의 작은 보트를 이용해서 채소와 살림 등을 운반하였는데 육지의 삼륜차나 작은 트럭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똔네삽 호수 매점까지는 30분 남짓 소요된다고 했다. 주변에는 수상가옥과 조선소 등이 들어서 있고, 자귀나무와 아카시아 등이 숲을 이룬 곳도 있었다. 일행이 탄 목선은 누런 황토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엔진 소음이 어찌나 큰지 귀가 따가웠다. 

가난 속에서도 웃음 잃지 않는 수상마을 아이들

 
▲ 관광객이 승선한 배가 온 것을 알고 목에 구렁이를 걸친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 조종안


똔네삽 호수가 가까워지니까 음료수가 담긴 가방을 든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하나라도 팔려고 몸부림이었다. 전쟁이 따로 없었다. 생계를 위해 학교도 안 간다고 했다. 캄보디아 문맹률이 40%인 이유를 그들이 행동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수상마을 아이들은 눈이 마주치면 손을 들어 흔들면서 활짝 웃었다. 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재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답을 얻기도 했다. 그들은 한국어를 누구에게 배웠는지 "오빠 멋져요!", "아저씨 멋져요!"를 외치면서 물건을 팔았다. 

 
▲ 자신의 가난과 죄없는 아기를 무기(?)로 구걸하는 주민.     © 조종안
▲ 목에 구렁이를 걸치고 노래를 불래대는 꼬마, 구렁이는 인근에서 많이 잡히는데 독이 없다고 합니다.     © 조종안


구렁이를 목에 걸치고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며 구걸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진모델이 되어주고 돈을 받기도 했다. 젖먹이 아이를 가슴에 품은 아기 엄마가 자신의 가난을 보여주는 것으로 구걸하는 모습이 애처롭고 불쌍했지만, 한편 비겁해 보이기도 했다. 

어떤 꼬마는 우리가 탄 배를 따라오며 노래를 불러댔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이며 계속 따라오기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 1달러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배들이 몰려들면서 “1달러!”를 외쳐댔다. 큰돈은 아니지만 난감했다. 

전쟁의 상흔이 관광지로 변한 ‘똔네삽 호수’ 

 
▲ 베트남 선상난민을 떠오르게 하는 수상마을 주민들.     © 조종안


멀리에서는 수상가옥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가까워지니까 다닥다닥 붙어 마을로 변했고, 마을이 모여 도시 형태를 띠었다. 물 위에 떠 있는 판자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상마을’보다 ‘수상도시’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현지 가이드 사몬은 수상마을의 90%가 베트남 난민이라고 귀띔했다. 노는 땅이 많은데도 위험한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수상마을 주민이 육지에 올라와 살면 멀미를 하기 때문이란다. 육지에서 멀미하다니 웃음이 나왔다. 

똔네삽 호수에는 수백 년 전부터 인근 베트남과 태국 등지에서 전쟁을 피해 탈출한 유민과 극빈층인 캄보디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단다. 지금처럼 대규모 수상마을이 형성된 것은 베트남전쟁이 끝난 1975년 이후라고. 

수상마을은 월남이 패망하면서 수많은 난민이 무동력선을 타고 건너와 자리를 잡으면서 조성됐다 한다. 당시 캄보디아는 보트피플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갈 곳 없는 난민들이 정착할 수밖에 없었단다. 전쟁의 상흔이 국제 관광지가 되다니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육지의 슈퍼마켓 같은 수상마을 매점

 
▲ 배가 도착하자 끈을 잡아주는 매점 종업원들. 가족으로 보였습니다.     © 조종안


휴게소를 겸하고 있는 수상마을 매점은 육지의 슈퍼마켓과 비슷했다. 진열대에는 이름 모를 과자와 맥주, 새우튀김 등을 팔았다. 티셔츠와 기념 수건도 진열해놓았다. 똔네삽 호수 방문 기념으로 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2달러를 주고 밀짚모자 하나를 구입했다. 

수상매점에서 물건을 살 때는 깎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4달러짜리 밀짚모자를 백준호 목사님이 거들어서 2달러 깎았기 때문. 일행들은 커피와 음료수를 마시며 바다처럼 펼쳐지는 똔네삽 호수를 가슴에 담으며 아이쇼핑을 즐겼다. 

매점 주변의 흙탕물이 가난을 설명해주는 듯했다. 그래도 주민들은 목욕, 빨래는 물론 식수도 똔네삽 물을 이용한단다. 배설물도 그냥 버린다고. 불결하지만 생각보다 깨끗하단다. 강한 자외선이 수표면을 소독해주고, 황토가 살균작용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 매점에 진열된 악어.      © 조종안


똔네삽 호수는 풍부한 어족이 주민들의 단백질을 공급해준다고 한다. 호수에 악어도 살고 있으며 키우는 집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매점에는 암·수 한 쌍으로 보이는 악어 두 마리의 껍질을 나란히 진열해놓고 있었다.

열대 과일을 수북이 쌓아놓은 과일가게와 얼음가게, 잡화점도 있었다. 사몬은 이발소, 주유소, 마을회관, 파출소, 우체국, 교회 등 육지에 있는 것은 모두 있다고 소개했다. 육지의 도시를 옮겨놓은 듯했는데 주민들은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 매점 주인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강아지. 모든 생활이 물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 조종안


처음에는 가이드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매점 아주머니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하얀 강아지를 보고 의문이 풀렸다. 강아지를 기를 수 있는 조건이라면 모든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놀랍게도 강아지를 기르는 집들이 많았다. 

수상마을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쉬웠다. 우리가 타고 간 목선이 수상마을 매점을 출발, 선착장 도착까지는 30분 남짓 소요되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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