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의 '교회와 시내'
11명의 '데카브리스트' 귀족 부인들이 꽃 피운 문화와 예술
신영수 기자 | 입력 : 2011/04/30 [13:46]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우는 이르쿠츠크(Iruktsk)는 앙가라 강과 이르쿠트 강의 합류지에서 앙가라 강변을 끼고 있다. 1652년 러시아가 이 지역을 처음 식민지로 만들 당시에 세운 월동 야영지에서 비롯되었으며, 1661년에는 요새가 건설되었다. 1898년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들어선 뒤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오늘날 이르쿠츠크는 다양한 기계제품들의 제조업을 비롯한 공업의 발달로 시베리아의 주요공업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인구는 604,500명(1991). 이르쿠츠크에는 많은 러시아정교의 교회와 성당이 있어 인상적이다. 러시아는 10세기에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였으며, 그 당시의 러시아 땅은 키에프 공국이 주인이었다. 그러니 정교는 1천년 이상 동안 러시아 사람들의 종교로 이어져 온 것이다. 정교를 받아들이고 민족적인 색채가 가미돼 후엔 러시아정교로 불렸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보고 있다.
▲ The Epiphany Cathedral © 신영수 기자 | |
▲ The Church of The Saviour © 신영수 기자 | |
▲ The Polish Cathedral © 신영수 기자 | |
The Znamenskiy Convent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본래 수녀원이었는데 지금은 일반 교회의 기능을 하고 있다.
수도원 뜰에는 트루베츠코이(후술) 부인과 그 자식들의 무덤이 있다.
▲ The Church of Our Lady of Kazan © 신영수 기자 | |
The House of Decemberist
일반적으로 시베리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유형"이다. 이르쿠츠크는 혁명과 유형의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25년 12월 러시아의 젊은 귀족 장교들은 황제에 대항하여 혁명을 시도한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서 유럽의 자유로운 기운을 맛본 그들은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봉기한 것이다. 이들을 데카브리스트라 부른다. ‘데카브리’는 러시아어로 12월이라는 뜻이고 데카브리스트는 ‘12월 당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혁명은 성공하지 못해 핵심들은 사형에 처해지고 1백20여명의 젊은 귀족들은 시베리아로 유형와 이르쿠츠크에서도 동쪽으로 수백 킬로 떨어진 치타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다.
감동적인 것은 11명의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은 귀족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찾아 시베리아로 온다. 혹독한 추위로 오는 길에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트루베츠코이 공의 부인은 유형지에 도착해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에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10년간의 유형생활을 마친 그들은 이곳 이르쿠츠크에 살도록 허락을 받는다. 트루베츠코이도 여기(아래 사진)에 집을 짓고 살게 된다. 이곳에서 살면서 그들은 음악회를 개최하고, 연극 공연을 하며, 문학적인 만남을 갖는다. 이런 테카브리스트들의 활동이 이 도시를 문화향기 넘치는 도시로 만들었고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칭을 갖게 한 것이다.
▲ The Holy Cross Church © 신영수 기자 | |
영원의 불
2차 세계대전 당시 시베리아 출신으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용사들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 해질녁 호텔에서 우아하게 한잔과 식사 © 신영수 기자 | |
경상조은뉴스 / 신영수 기자 / youngsu4903@naver.com원본 기사 보기: 경상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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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dan 2014/08/17 [06:28]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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