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들 "상봉보다는 서신 교환도 이뤄져야"

류재복 기자 | 기사입력 2015/10/22 [10:09]

이산가족들 "상봉보다는 서신 교환도 이뤄져야"

류재복 기자 | 입력 : 2015/10/22 [10:09]

 
[류재복 대기자]

"몇 분 뒤면 또 밥 먹으러 올 걸, 왜 버스에 태워 끌고 가는지…." 버스를 타고 멀어지는 북측 혈육을 바라보는 한 남측 이산가족이 한숨과 함께 말끝을 흐렸다. 상봉 시간(120분)이 다 됐다며 수십 년 만에 만난 가족을 숙소로 인솔해 가는 북측 보장성원(감시요원)들이 야속했던 것이다. 북측 외삼촌 도흥규(85)씨를 만난 남측 상봉자 이민희(여·54)씨는 "(오전) 개별 상봉이 두 시간밖에 없어 너무 아쉽다"며 "한 시간 후에 다시 만나 식사하는 거라면 그냥 같이 있다가 단풍나무 앞에서 사진도 찍고 하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상봉 이틀째인 21일 금강산에서 오전 개별 상봉과 공동 중식, 오후 단체 상봉 등 두 시간씩 세 차례, 총 6시간의 만남을 가졌다. 이산가족들은 긴장과 감격이 교차했던 전날보다는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시간씩 '징검다리'식으로 이뤄진 짧은 만남에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민희씨는 "어제 첫 상봉이 끝나갈 때 삼촌이 이걸로 모든 상봉이 끝난 줄 알고 '두 시간 만날 거면 상봉을 왜 하느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민희씨 등 남측 가족들이 "계속 또 볼 거예요"라고 몇 번을 설득한 뒤에야 흥규씨는 "이따가 꼭 와"라며 진정했다고 한다.

 

북측 사촌누이를 만난 강정구(81)씨도 "이런 상봉 행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렇게 한 번씩 만나는 거 가지고는 안 된다"며 "서신 교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남측 조카들을 만난 북측 한순녀(여·82)씨는 "이렇게 몇 시간씩 끊어서 상봉할 게 아니라 방에서 이틀 정도 같이 자고 그래야 서로 이야기도 오래 하고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상봉장에선 구슬픈 옛 노래도 흘렀다. 남측 이정숙(여·68)씨가 북측 아버지 이흥종(88)씨에게 "이번에 돌아가면 아버지 목소리를 기억 못하니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 것. 이씨는 젊은 시절 애창곡인 '백마강'과 '애수의 소야곡'을 불렀다.

 

"나 살아 있다. 잘 살고 있고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6·25 때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의용군'에 끌려갔다는 남철순(여·82)씨는 남측 동생 순옥(여·80)씨 카메라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에 사는 두 동생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였다. "다들 같이 왔어야 하는데 갑자기 (상봉하라는) 연락이 오고 여기가 너무 멀어 못 왔다"는 순옥씨 말에 철순씨가 "멀리 사는 두 동생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 즉석에서 촬영이 이뤄진 것이다. 이산가족들의 표정은 전날보다 밝았다. 북측 양만룡(83)씨의 조카 양영례(여·67)씨는 "(오늘 다시 보니까)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마음을 여니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졌다 전날 65년 만에 상봉한 남측 이순규(85)씨, 북측 오인세(83)씨 부부도 한결 편안해진 표정이었다. 공동 중식 때 이씨가 오씨 무릎에 냅킨을 얹어주자 오씨가 이씨의 손을 꼭 잡는 모습은 취재진의 이목을 끌었다. 북측 가족들은 오전 개별 상봉 때 빨간색 '대봉' 마크가 찍힌 하늘색 쇼핑백에 백두산 들쭉술과 평양술 등 북한 당국이 제공한 선물을 남측 가족에게 건넸다. 남측 가족들은 외화(달러)와 의류, 생필품, 의약품 등을 선물로 준비했다. 일부 북측 가족은 우리 측이 공동 중식 때 준비한 귤을 "처음 본다"며 껍질째 먹으려 했다.

 

한편 남측 취재단은 24일 시작하는 2차 방북 때 개인 노트북 대신 기본 프로그램만 깔린 '빈 노트북'을 가져가기로 했다. 20~21일 북측의 전례없는 노트북 전수 조사로 시비가 일어 상봉행사에 일부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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