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처럼 닭들이 납시셨고, 그중 장닭은 대표로 교회 문앞에 서계신다. 어째 오늘은 늦으시네요, 아예 주인 행세하려 드는 것 같다. 주인, 그래 누가 주인이냐?
사실 처음부터 우리는 이 문제로 씨름했다. 돈을 내고 전세계약을 맺었으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우리의 배타적 영토다, 그걸 표시하기 위해 망가진 자물쇠를 교체하여 문단속을 하고, 우리 구역은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닦고, 꼼꼼하게 계산해서 전기세를 내고, 짬짬히 오줌도 누고 땅밟기도 하면서 확인하고..말하자면 NLL을 지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그러나 모든 게 상대가 있고 주객관적 조건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계약서를 작성할 수도 없었거니와, 우리도 계약서에 명시된 것 말고 이렇게 저렇게 누리는 게 많았다. 갑이 알고 을도 안다.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오감이 다 살아있는데 모르면 바보일 것이다. 그러니 경계가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고, 재미있게 누리자면 재미있고 불편하게 생각하면 되게 불편한 동거생활을 지난 2년간 해온 셈이다. 이렇게 살면서 그 동안 배운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내려놓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집착을 내려놓고, 소유권을 내려놓고, NLL을 내려놓고, ... 처음 얼마 동안은 아침저녁 꼼꼼하게 문단속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사시사철 하루 24시간 문을 열어두고 태평하게 사는 연습을 하는 중이고, 아시는 분은 아시는 것과 같이 밭에는 망을 치지 않고 역시 두 해째 작게나마 농사를 져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저 닭들이다. 처음에는 실갱이를 참 많이 했다. 왜 단도리를 그렇게 허술하게 하느냐, 닭이 너무 많고 냄새가 심하다, 미안한데 먹고 살라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좀 조심해달라...그런데 참 세월이 약이더라. 사람이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 좀 참고 기다리니 모든 게 견딜만한 수준으로 되고, 견딜만한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아름답다고 느낄만한 상태로 편한다. 햇살과 바람이 자유롭게 통하듯, 새와 벌나비가 허락받지 않고 넘나들듯, 꽃과 풀이 그렇게 피어나고 자라듯,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고 날마다 그 아름다운 세상 보며 내 영혼이 고단함을 잊고 소생하듯, 저 닭들이 일일이 나한테 결재받지 않고 제 본성대로 이리저리 다니며 놀고 이따금씩 교회를 방문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제 얘기를 하고 있는 줄 아는지 이쪽 저쪽에서 "꼬끼요~" "꼬끼요~" 목청을 돋운다. 산중에서 들려온 매미소리와 함께 이 모든 것이 다 불역낙호아(기쁘지 아니한가)? 누구 말대로 내려놓으니 편하고, 비우니 충만하며, 망 안 쳐서 안 망쳤다. 내 생활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라도 이런 비폭력 비무장 평화자유구역 DMZ가 허락된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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