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맨손으로 일어나 결국 맨손으로... 그는 누구인가? 성공과 좌절 거듭한 기업형 정치인 [류재복 대기자] “나는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우리에게 크나큰 용기를 주는 희망의 힘과 신념의 가능성을 온몸으로 실증하고 싶다.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희망의 별은 더욱 뚜렷한 빛을 발하고, 파도가 거칠수록 신념의 돛대는 더욱 강건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기록으로 보여주고 싶다.” 자서전 ‘새벽빛’ 중. 1000원으로 시작해 2조 원대 대기업을 일군 기업인. 지난 2002년부터 정치권 입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10년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결국 선거법 위반 굴레만 쓴 정치인. 희망과 신념의 가능성을 온몸으로 실증하고 싶다던 성완종(65) 전 경남기업 회장이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자원외교 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이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면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온 그의 인생역정이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1951년 전쟁 통에 충남 서산시 해미에서 태어났다. 나름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갑자기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계모 밑에서 스스로 나무짐을 지고 한겨울에는 남의 집 헛간을 전전하며 불우한 삶을 이어갔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어머니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그는 낮에는 신문배달과 약국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교회에서 공부를 해 가며 억척스러운 삶을 이어갔다. 7년여 간의 서울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성 전 회장은 이후 1000원을 밑천으로 화물 중개업을 시작해 1977년 건설업에 뛰어들어 대아건설을 창업한다. 이후 1985년부터 10여 년간 대아건설 회장을 지냈으며,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해 전국 도급순위 26위의 대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은 1991년 31억 원의 사재를 털어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300여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 현재까지 약 2만여 명의 국내·외 청소년들에게 175억 원 규모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학술·교육·문화·사회복지사업을 통해 총 240여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 국내 최대 규모의 장학재단이기도 하다. 이후 성 전 회장은 정치권 입성 모색은 계속 됐고 마침내 지난 19대 총선에서 원내 입성에 성공하면서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선진당 원내대표, 새누리당 충남도당위원장으로 활약했지만 총선 전 지역 자율방범연합회 청소년선도 지원금 명목으로 1000만 원을 기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2014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경남기업 회장으로 복귀 했지만 최근 경영악화와 검찰수사 등 심적 고통이 계속되면서 삶의 마지막 선택을 하고 말았다. <저작권자 ⓒ 국제기독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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