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하고 찾아오는 '축복' 놓치지 않는 방법은...[목회자 칼럼]지금 여기(Now and Here) (요 4:1-26)지옥에 가면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우는데, 이상하게 ‘껄껄껄’ 소리를 내면서 운단다. 그때 그러지 말껄! 그때 잘 할껄! 그때 믿을껄! 그때 붙잡을껄! 좋게 말할 때 들을껄!....웃자고 지어낸 말이겠지만,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쉽게, 자주 기회를 흘려버리는가를 말해주는 얘기다.
기회는 공평해서 어느 사람에게건 얼마만큼은 찾아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부할 기회, 준비할 기회, 봉사할 기회, 돈 벌 기회, 돈 바칠 기회, 회개할 기회, 다시 시작할 기회.....하나님은 사랑이시지 않은가? 그러나 왜 누구는 기회를 잘 붙잡아 후회없는 인생을 사는데, 왜 누구는 기회를 놓치되 이 기회 저 기회 다 놓치고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서 마침내는 지옥에 가서 껄껄껄 소리를 내면서 울까? 기회란 것이 늘 변장을 하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축복이다” 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예상 밖의 허름한 포장지에 싸여 오니까, 내가 예상하는 뻔한 모습으로 가닌 예상 밖의 이상한 모습으로 찾아오니까,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뻔히 보고도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그냥 흘려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적한테 당하듯이 그렇게 당하고 마는 것인데, 성경에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는 말이 그런 뜻이다. 이렇게 변장을 하고 찾아오는 축복을 놓치지 않은 방법이 있을까? 있다! 매사, 언제든지 믿음으로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답이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이든 주님 대하듯 정성을 다하는 것이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 3:23)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 어디에든 하나님은 계시니 그 하나님을 만나자면 이 방법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같은 밥을 먹어도 감사하게 맛있게 먹으면 예뻐서 더주고 싶고, 반찬타령 하면서 깨지락 깨지락 먹으면 준 밥도 뺏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야 안 하시겠지만, 하나님이야말로 인격이시다.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며(시 107:9),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되(마 7:7)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라(눅 6:38). 지금 여기서 내가 이 사람과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우리에게 찾아온 기회를 어느 만큼은 붙잡은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안타깝게도 많은 기회를 놓친 결과일수도 있다. 그래도 감사하긴 감사하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거두어주시는 사랑, 한번 더 기회를 주시는 자비와 긍휼로써 우리를 이렇게 보전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여전히 우리에게는 또 많은 은혜가 준비되어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그릇을 많이 준비하라고 하시며(왕하 4:3),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고 하신다. 구하라 하시고, 찾으라 하시고, 두드리라 하신다(마 7:7).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이 소중한 기회를 흘려버렸건, 이제라도 놓치지 않는 복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오늘 성경본문의 사마리아 여자는 흔히 우물가의 여인으로 알려진 사람, 말 못할 사연이 있는 사람이다. 사마리아라는 곳이 사연이 많은 지역이고, 한낮 그 뜨거운 햇살이 비취는 때에 우물가에 나왔는데 사연이 없으면 그렇게 하겠는가? 아닌 게 아니라 그 동안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란다. 많이 지친 여자, 외로운 여자, 인생살이에 권태로운 여자, 목이 마른 여자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야곱보다 더?...” “그분이 오시면....” 자꾸만 말을 거는 나그네 예수의 말에 말려들어 호기심이 발동 안 하는 건 아니고 대꾸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위장하고 도망치려는 사연많은 여인 본색이 진하게 드러나는 그녀의 말투가 말한다. 이만큼이라도 말문을 연 게 큰 진전이기는 하지만, “그가 오시면...”, 그건 그래서 여전히 회피다. 기실, 그런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다음에 보자는 말 자주 하는 사람 치고 별볼일있는 사람 별로 없다.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오늘, 지금 여기 내 앞에, 내가 온 힘을 다해 정신 차리고 붙잡아야 할 물실호기의 축복, 절호의 기회가 와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이 일이 혹시 변장하고 찾아온 축복, 나그네로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닐까?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바로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다.(마 25장)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다.(눅 17:21) “바로 지금이 그때”(요 4:23), “내가 바로 그 사람”(요 4:26)이라고 하시는 예수의 말씀이 그래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하늘과 땅, 온 우주에 편만하신 하나님,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 속에 계신 그리스도, 그 어디에도 계시지 않은 법이 없는 그분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자가 복되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매사에, 믿음으로 기쁨으로,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자가 정녕 복되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그분의 은총이 온통 그의 것이다. [출처]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저작권자 ⓒ 국제기독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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