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언니들에게로 평화열차 달려갔으면"

[평화열차 인터뷰] 이산의 아픔 가진 평화열차 참가자 인광삼 씨

평화열차 공동취재단 | 기사입력 2013/10/18 [04:58]

"北 언니들에게로 평화열차 달려갔으면"

[평화열차 인터뷰] 이산의 아픔 가진 평화열차 참가자 인광삼 씨

평화열차 공동취재단 | 입력 : 2013/10/18 [04:58]
[편집부 주] 한반도 화해와 통일을 위한 '평화열차'가 출발을 알리는 힘찬 기적을 울렸다. 분단 극복의 상징적인 장소인 독일 베를린에서 출발해 러시아 모스크바 및 이르쿠츠크 중국 베이징 평양을 거쳐 부산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진행되는 '평화열차' 행사는 7일 베를린 하일란츠교회(Heilandskirche)에서 평화마당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브란덴부르크광장에서 평화기원 촛불예배를 드리면서 23박 24일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평화열차가 꼭 평양을 통과했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상황인건 알지만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고 싶어요. 어떻게든 북한에 있는 언니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에 있는 언니들을 만나기 위해 평화열차에 참가한 인광삼 씨     © 평화열차 공동취재단


북한에 살고 있는 언니들을 만나고 싶어 '평화열차'에 참가한 인광삼 씨(64 보쿰멜란톤교회). 황해도 태생인 그녀는 전쟁 중 가족들과 함께 사리원에 있는 외할머니댁으로 피난을 갔다가 끝내 언니 둘은 월남을 하지 못하고 부모와 오빠 그리고 광삼 씨만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이산가족이 됐다.

이후 인 씨는 1967년에 간호학생으로 독일로 간 뒤 남편을 만나 1988년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광삼 씨는 뉴욕의 한인목회자의 도움으로 지난 1991년 9월 한차례 방북해 언니들을 만난 뒤 2005년 EMS(독일서남부개신교회선교회) 관계자들과 함께 또 한 차례 북한을 방문해 언니들을 만난 바 있다.

"91년 9월 초 북한 사리원의 한 길가에 도착하니 언니와 형부가 나와 있었어요. 언니들은 저를 껴안고 우는데 저는 낯설어서 눈물도 안나오더라구요. 저는 헤어질 때 갓난 아이여서 언니들의 얼굴을 몰랐거든요. 그러나 핏줄은 속일 수 없나 봐요. 언니들이 제 손 아래 동생들과 너무나 닮았고 목소리는 전화로 들었으면 분간을 못할 정도로 완전히 어머니와 똑같은 거예요."

첫 만남 이후 인 씨는 언니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조카들의 결혼 언니의 환갑잔치 등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2년간은 편지 왕래를 하지 못해 언니들의 소식이 매우 궁금한 상태다.

그러던 중 인 씨는 지난 5월 한국에 왔다가 예배를 드리러 참석한 교회 소식지에서 평화열차에 대한 정보를 얻고 평양에서 꼭 언니들을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이번 행사에 참가하게 된 것.

"1908년생인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셔요. 어머니의 소원이 언니들을 만나보는 거거든요. 아직도 매일 새벽마다 언니들을 위해 기도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언니들을 만나면 좋을텐데…."

떨리는 목소리로 바람을 간신히 전한 인 씨의 눈가는 어느덧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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