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430 년의 에굽으로 부터 하나님의 권능으로 자유와 해방을 경험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에굽의 칼날의 위협과 노예 같은 혹독한 노동을 살며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늘에 호소하였다.
하나님은 이 부르짖음 (체아카)를 들으시고 모세를 앞세워 자유와 해방의 역사를 이루셨다. 애굽 최고의 통치자 파라오의 오만과 자만의 모든 교만이 바벨탑과 인간의 힘을 신처럼 사용하던 악을 꺽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역사의 한 복판에서 분명히 보이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와 해방을 맛보던 그 순간 부터 하나님을 잃고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물질과 맘몬의 우상에 붙잡히어 금 송아지를 섬기게 되었다. 그리고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통치 하고 억압하는 스스로의 신이 되어 갔다. 애굽의 바로의 교만의 영이 그들에게 옮겨간 것이다. 교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과 행동이다. 내가 잘나고 옳은 것이니 나를 따르라는 신적 생각과 행동인 것이다. 다시말하면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신의 영광을 빼앗아 사는 것이다. 19 세기 서구 이성을 종합하여 낸 헤겔은 신이란 " 절대 정신" 이라 하였다. 그럴까? 신이 인간의 이성의 꼭대기 정신 세계의 정상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의 인간이 만든 문명과 정신은 어찌도 이리 지리멸렬하며 천박하고 더러운 오염물보다 더 추잡하고 졸렬한 것인가? 고대에는 인간들이 전쟁의 주체가 아니라 신들이 전쟁의 주체로서 신들과의 전쟁이었다. 이 땅에는 많은 신들이 있다. 신을 대리하는 교황도 있고 자신이 신이 되어 신적 사기를 치는 죽은 문선명이나 박태선을 비롯한 요즘의 신천지 등 교주들이 있다. 인간은 인간의 능력으로 자신의 문제를 풀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두뇌를 통하여 차와 비행기 인공위성을 띄우고 우주를 탐색하며 인공적 인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여전히 쌀 한톨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나무 한 그루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DNA를 통하여 복제 동물과 복제 인간을 만들어 낸다 하여도 여전히 그 DNA 자체를 생산하지 못한다.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이며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 심리학자 혹은 신학자라 하여도 그들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통한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할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우리가 의존하는 물질 화폐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것들은 사라질 부질없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라질 것을 의지한다는 것은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다. 서구 중세에는 신이 인간을 억압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신을 억압하고 가두어 놓고 있다. 신을 편리에 따라서 이용하고 활용한다. 자기들의 뱃속을 채우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 그리고 탐욕이 신을 삼켜버렸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골짜기는 에스겔 골짜기와 다를바 없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모든 것을 삼켜 생명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불태워버렸다. 신의 이름을 부르며 장사치로 변한 종교가와 예수와 각종 종교의 창시자 이름을 도용한 사이비 종교의 상점들이 인간과 역사의 장터를 메우고 있다. 지금도 신들이 전쟁을 한다 어떤 신들을 앞 세워야 더 큰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얻고 쾌락을 증대 시킬수 있는가의 다툼이다. 세속의 권력과 야합하고 세속의 자본가와 아부아첨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은 입술에서 장사치의 입놀림만 하고 거짓 평화 거짓 정의 거짓 생명을 말하며 백성과 민중을 속인다. 참 목자 예수그리스도는 마음에서 멀고 거짓 사랑과 용서를 말하며 상처받은 자의 상처를 키워만간다. 이 에스겔 골짜기의 뼈들이 살아 나겠습니까? BC 593 년경 제사장 에스겔에게 바빌론 땅 포로의 땅, 그발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여 에스겔 골짜기 가득한 뼈들의 환상을 본다. 나라를 잃고 포로된 몸으로서 타국의 강가에서 말 없는 회한에 잠겨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이 그에게 임하며 끝내 이 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는 마침내 예언자가 되고 그의 입술을 통하여 무서운 심판의 예언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이 환상을 통하여 죽음과 절망의 끝인 뼈들이 가득히 쌓여있는 죽음의 골짜기에 생명과 희망의 예언을 쏟아낸다. 이 뼈들이 살아 날 수 있을까? 이 남북이 갈라져 같은 동족과 핏줄들이 동족상잔을 겪은지 63년이 지난 지금 분단의 에스겔 골짜기에 가득 쌓여 있는 탐욕과 거짓 쾌락과 욕망이 분출 되고, 맘몬의 우상과 귀신 에게 붙잡혀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그리고 거짓 종교가들과 종교인들 사이비 종교가와 종교인들이 뼈들을 보며 이렇게 묻는다. 이 뼈들이 살아 날 수 있을까? 살아 날 수 있단다. 어떻게 뼈들에게 말한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뼈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시리니(I will make breath enter you.) 숨이 너에게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뼈들은 숨이 없는 죽은 존재이다. 그 죽은 뼈들에게 숨,(BREATH) 불어넣으면 살아 날 것이라는 것이다.(you will come to life) 그리고 그들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며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면 너희가 살아 날 것이라 한다. 우리는 먼저 사람과 권력 자본에 아부 아첨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대언해야 한다. 그 말씀을 통하여 숨과 생기를 불어 넣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이 역사와 교단 교회 우리들 가정에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 없고 인간의 생각과 더러운 우상들과 맘몬의 찌꺼기들이 대신하고 잇다. 여기에는 숨과 생명이 뼈들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기장이나 예장이나 카톨릭이나 혹은 개신교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 하나님으로 부터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숨을 쉬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 이 시대는 성경책과 여러가지 말씀을 듣고 볼 수 있는 매체들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자는 없고 말씀을 먹고 새기는 자도 없으며 그것을 상업화하는 자들만 우글거린다. 더 큰 이득을 남기는 부동산 개발을 통하여 서로가 큰 이익을 남기는 경쟁과 싸움만한다. 우리는 사방에 널려있는 죽음의 뼈들에게 생기 숨(breath) 을 불어 넣어 죽은 뼈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야한다. 백성들이 자신들이 판 죽음의 우상 맘몬과 탐욕 쾌락의 무덤을 열고 나오도록 하나님이 말씀, 숨과 생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14절에서는 다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의 영(I will put my Spirit in you and you will live)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우리는 여전히 마른 뼈에 불과하다. 살아 있으나 죽은자요, 죽어있지만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면 산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역사와 세상 교회와 공도 속에는 과연 하나님의 영이 살아 있는가? 우리의 죽은 뼈들이 힘즐이 생기고 살이 붙으며 살아서 주께 영광을 돌리고 죽은 역사를 살려내는 권능의 영이 있는가를 심도있게 질문하며 대답을 얻어야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이 뼈들이 살아 날 수 있겠느냐? 살아 날 수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가 있어야하고 그 명령을 들어야 하며 둘째는 그의 생기 숨을 받아야 하고 세번째는 그의 영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여전히 에스겔 골짜기의 뼈들로 존재하는 것이다. [출처]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저작권자 ⓒ 국제기독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목회와 신앙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