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허병주 | 기사입력 2019/01/15 [19:58]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허병주 | 입력 : 2019/01/15 [19:58]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韓國天父敎傳道館復興協會)


신종교단체
 1980년 8월 23일 전도관의 창시자인 박태선에 의해서 출발된 종교단체.   
분야
신종교
유형
단체
시대
현대
영역닫기정의
1980년 8월 23일 전도관의 창시자인 박태선에 의해서 출발된 종교단체.
영역닫기내용
전도관의 태동기는 박태선에 의해 이루어졌다. 박태선은 1917년 평남 덕천군 덕천읍 읍남리 148번지에서 불우하게 출생하였다. 유년기에 기독교를 접하고 16세에 도일(渡日), 고학하면서 기독교에 몰입하였고 28세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서울 남대문 교회 집사로 깊은 신앙생활을 하던 중, 평양에서 월남한 정득은으로부터 거룩한 피의 전수의 종교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후 6·25전쟁중 ‘사명자’로 인식하는 종교체험을 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 창동교회 김치선 목사의 후원아래 장로의 신분으로 나운몽·양도천과 함께 전국 부흥회의 부흥사로 등단하여, 1955년 3월 28일 남산집회에서 수많은 병고침의 역사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인 부흥회의 참석자들로부터 ‘사명자’로 인식을 받아 1955년 4월 8일 새로운 기독교 종파인 ‘한국예수교부흥협회’를 급조하였다.
그러나 기성 기독교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게 되었다. 박태선의 전국적 부흥회의 성공은 6·25전쟁의 재난 상황아래 민중들에게 던진 희망의 메시지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전도관 시대는 1956년 1월 3일 박태선이 자신의 단체를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일명 전도관)’로 개명하고 전국적으로 전도관(1956년 22개의 개설)을 개설 후, 경기도 소사에 제1신앙촌(1957∼1962), 경기도 덕소에 제2신앙촌(1962∼1970), 경남 기장에 제3신앙촌(1970∼현재)을 차례로 건설한다. 신앙촌은 전도관 신앙의 핵심지로 박태선을 중심으로 ‘영생(永生)’과 ‘천년성(千年城)’이 실현되는 곳으로 믿어지게 되었다.
소사신앙촌과 덕소 신앙촌에는 현재까지도 신앙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다(그러나 기장 신앙촌을 제외하고 점차 초기 공동체의 특성이 약화되었음). 박태선에 의한 신앙촌이 건설되고 유지되어온 원동력은 박태선의 강력한 영적 카리스마로 보아야 한다.
박태선은 제1·제2·제3 신앙촌을 거쳐오면서 가족들이 사망하는 시련을 거치게 된다. 그 뒤에 박태선은 여신도 최옥순과 재혼하였고, 승리제단 건축헌금 전용, 시온그룹의 부도사태와 같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
천부교 시대는 박태선이 1980년 8월 23일 전도관에서 천부교로 개명함과 동시에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며, 성경의 98%가 거짓이고 예수는 사탄의 새끼”라는 요지의 천부교 교리를 발표한다.
또한 원죄를 ‘피의 변질’ 즉 ‘음란한 성적타락’으로 규정하고 일체의 부부생활 금지, 부부를 포함한 모든 남녀의 별거, 이혼을 지시하기에 이른다. 박태선의 급격한 변신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신도들의 이탈사태가 벌어졌고, ‘섹스 안찰’ 시비가 일기도 하였다.
특히, 박태선을 이해 못한 최옥순은 축출당하였다. 천부교로의 변신 이후 10년간은 박태선의 새로운 위상을 확립하고 천부교의 교리를 확정하려는 기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태선은 지병이었던 당뇨 합병증으로 1990년 2월8일 05시에 사망하였다. 박태선의 사망은 ‘영생’을 믿어온 천부교에 또 다른 시련을 안겨다 주었으며 상당수의 신도들은 천부교를 떠나게 되었다.
현재는 박태선을 대신하여 박윤명이 천부교의 지도자이다. 그는 박태선의 3남으로 박태선 사망 후, 천부교 교리 정비 및 박태선 말씀집 편찬을 준비하고 있으며, 시온그룹의 회장직을 주로 맡아오고 있다.
박윤명은 영적 카리스마를 내세우지 않고 합리적 판단과 경제적 논리로 천부교를 이끌어 가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천부교인들은 박윤명을 박태선의 사명을 완수할 지도자로 존경하고 있다.
천부교의 특징은 박태선과 기장신앙촌, 생명물을 중심한 신앙생활, 박태선 재림과 임박한 천년왕국 도래 소망, 철저한 금욕 및 독신생활, 남녀의 철저한 구분(신도 남녀 성비 불균형심화), 경전(經典)의 부재이다. 천부교의 당면과제는 정체성 확보(교리의 확정), 독신생활 교리 지속여부, 대 사회활동, 전도활동 재개이다.
전망은 박윤명을 중심한 제2의 창교의 노력을 통해 정체성을 확보하여 사회발전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영역닫기참고문헌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연혁(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 주일학교 교재(초신자를 위한 체계 말씀,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 박태선 약전(최중현,말씀과 신학,1998년)

  • 전도관에서 천부교에로의 변화와 그 뒤-K 교회 참여관찰을 포함하여(김종석,선문대 2000년도 신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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