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소사신앙촌 30년 부동산 전쟁''창시자 박태선 하나님 선언후 분열 1000억대 재산 소유권 다툼'<신동아>는 최신호(4월호)에서 소사신앙촌 30년 부동산 전쟁을 상세히 다뤄 눈길을 끌었다. <신동아>는 4월호에서 “창시자 박태선 ‘하나님’ 선언 후 분열 1000억대 재산 소유권 다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소사신앙촌 갈등을 다뤘다.
<신동아>는 해당 기사에서 “박태선 사후 계수동(현 범안로) 1만 평 부동산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도관파, 천부교파, 현 소유주가 물고 물린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 법원은 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 임시회장 허병주를 인준하면서 소송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보도한 것.
허덕수 장로, 소사 신앙촌 재산 형성 초기 막대한 기여 <신동아>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동과 범박동으로 이어진 옛 주소 계수동 8-10번지 일대의 현재 모습을 묘사한 뒤, 소사신앙촌 소송전의 전말을 본격적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신동아>는 소사동 소신교회 허병주(65) 목사에 대해 이 땅의 “소유권을 놓고 등기상 주인(계수주민협의회 259명) 등과 소송 중”이라고 소개한 뒤 “허 목사는 신앙촌을 만든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 임시회장이다. 이곳 부동산은 현 시가가 1000억 원대에 달한다. 언뜻 이권다툼처럼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고 기사를 이어갔다. 이어 이 소송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앙촌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면서, 박태선이 세운 전도관에 대해 1950년대부터 시작된 역사를 소개했다. <신동아>는 또한 허병주 목사와 신앙촌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허 목사는 초창기부터 소사신앙촌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 허덕수 장로는 박 장로와 함께 전도관을 세운 주역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허 목사는)박태선 장로의 후계자인 3남 박윤명 씨와 시온초중고를 함께 다녔다. 또한 고등부 회장을 지내는 등 핵심 신도로 성장했다.”고 소개를 이어갔다. 특히 신앙촌 재산 형성과 관련 허 목사의 말을 빌려 “아버지(허 목사의 부친)는 전도관에 헌금을 제일 많이 한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여주, 경주, 강진 등 전국 10여 곳에 도자기 공장을 갖고 계셨는데, 웬만한 시군을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 있었어요. 현 시가로 1000억 원대에 달하는 재산을 헌금하셨죠. 신앙촌에 기와 공장, 도자기 공장을 세우기도 하셨고요.”라며 소개했다. <신동아>는 박태선 장로가 본격적으로 이단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내가 하나님이다”고 폭탄 선언한 1980년 1월 1일 신년집회를 상세히 소개한 뒤 신도들의 혼란과 분열에 대해서 다르면서 기사를 이어갔다. <신동아>는 계속해서 박태선 장로의 잘못된 신앙관에 반발하는 신도들의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허 목사의 말을 빌려 “당시 천부교를 받아들인 신도는 10%도 안 됐다”, “특히 덕소에 있는 신도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러던 중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이 1981년 3월 소사신앙촌 앞에 국종제1교회를, 11월 덕소신앙촌 앞에 국종제2교회를 세웠어요. 박 장로가 하나님은 아니라고 본 신도들이 그곳으로 모여든 겁니다.”며 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의 시작을 소개했다. <신동아>는 이 같이 소송전이 일어나게 된 전말을 소개한 뒤 “많은 신도가 덕소신앙촌으로 옮겨가면서 사실상 버려졌던 소사신앙촌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1990년대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였다.”고 기사를 이어갔다. <신동아>는 종교부지였던 소사신앙촌 부지에 투기꾼이 끼어들게 된 사연을 소개한 뒤 허 목사와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한 축인 ▲ 계수주민협의회의 ‘불출석 무변론 승소’의 문제점 ▲계수주민협의회의의 주택배치증 위조 의혹 ▲계수주민협의회의 불법 등기 등의 문제점을 짚었다. <신동아>는 “허 목사는 현재 크게 두 건의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라면서, “그 하나는 이 씨 유족을 상대로 ‘계수주민협의회와의 소송에서 고의로 무대응해 재단에 손해를 입혔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 항소심”과, “지난해 12월부터 전도관 임시회장 자격으로 계수주민협의회 259명에 대해 개별적으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동아>는 끝으로 허 목사가 해당 소송과 관련해 밝힌 “소유권을 되찾으면 재단을 만들어 전도관 신자들을 위한 사업을 할 겁니다. 이 부동산은 1950~60년대 신앙촌에 전 재산을 바친 신도 모두의 재산입니다. 그분들은 이후 이혼을 강요당해 가정이 해체되는 등 인생이 파괴된 피해자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여생이라도 편할 수 있도록 요양시설을 만들고 의료시설, 복지시설을 만들려 합니다. 또한 이단연구재단을 만들어 더 이상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이단의 피해사례를 정리한 기념관을 만들 생각입니다.”는 소감을 끝으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저작권자 ⓒ 국제기독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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