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 준족 '대도 김일권' 영욕의 야구인생 50년 ①

"도둑질 잘했다고 상까지"... '대도' 김일권을 아시나요

조종안 기자 | 기사입력 2014/05/12 [04:49]

호타 준족 '대도 김일권' 영욕의 야구인생 50년 ①

"도둑질 잘했다고 상까지"... '대도' 김일권을 아시나요

조종안 기자 | 입력 : 2014/05/12 [04:49]
중국 길림성 용정시~명동촌 중간 지점의 '동량리 어구'. 이곳은 1920년 1월 4일 무장독립조직 철혈광복단원 6명이 군자금 마련을 위해 일제의 만주철도 부설자금 운송차량을 습격, 거금 15만 원을 탈취했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이 사건은 2008년 7월 개봉되어 불황에 허덕이던 한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액션영화 <놈, 놈, 놈>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2010년 8월 현장을 찾았을 때 가이드는 '15만 원 탈취사건' 기념비를 가리키며 "거금 탈취 기념비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허탈해 했다. 순간 왕년의 도루왕 김일권 선수가 생각났다. 그가 프로야구 최초로 300도루를 달성하고 동료들에게 했다는 농담 중 "대한민국에서 도둑질 잘했다고 상 받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는 대목이 떠올라서였다. -기자 말-   

 
▲ 고향 친구들과 추억의 거리(군산시 죽성로)를 거니는 김일권     © 조종안

  

한국 프로야구 원년(1982) 도루왕 김일권. 그는 해태 타이거즈(1982~1987), 태평양 돌핀스(1988~1990), LG 트윈스(1991) 등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1982년 7월 18일 광주구장(해태-OB) 경기에서 프로야구 최초로 한 경기 개인 최다 도루(5개) 기록을 작성한다. 사흘 후(21일)에는 인천구장(해태-삼미) 경기에서 7회 초 '홈스틸'을 성공, 4-4 균형을 깨고 결승점을 올리는 수훈을 세운다. 이는 1982년 전게임을 통해 유일한 '단독 홈스틸'이기도 하다. 
 
김일권은 1983년 9월 26일 인천구장(해태-삼미) 경기에서 6회 초 안타를 치고 1루에서 2루를 훔침으로써 프로통산 최초로 100도루(82년 53개 포함)를 달성한다. 이 기록은 자신의 시즌 100번째 안타를 등에 업고 세운 기록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또한 이날 경기는 그의 발만큼이나 빠르게(1시간 47분) 끝나 최단시간 경기 기록을 세우기도. 종전 기록은 대전구장(삼미-OB) 경기로 1시간 52분이었다. 
  
3년 후인 1986년 8월 21일 광주구장(해태-삼성) 경기에서 6회에 중전안타를 치고 2루를 훔쳐, 시즌 19개째 도루를 성공하면서 프로야구 최초로 통산 200도루 기원을 세운다. 유니폼을 태평양 돌핀스로 바꿔 입은 1988년에는 규정타석을 채우고도 삼진을 8개밖에 당하지 않았다. 이는 프로야구 시즌 최소 삼진 기록으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대망의 300도루는 1989년에 달성한다. 그해 9월 7일 인천구장(태평양-해태) 경기에서 5회와 7회 도루를 감행, 프로야구 최초로 300도루 기록을 작성한다. 경기 결과는 2-5, 태평양은 득점에 모두 연결된 두 개의 도루에도 불구하고 패한다. 그는 그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시즌 최다 도루(62개) 기록을 세우면서 '대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아마 시절 '작은 탄환'으로 불리면서 한 게임 한국최고 도루(6개) 기록을 세웠던 그는 프로통산 단독 홈스틸 두 개(1982, 1985)를 기록하고, 도루왕을 5회(1982, 1983, 1984, 1989, 1990) 차지했다. 프로야구 10시즌 동안 842경기에 출장(0.253), 도루 363개의 금자탑을 쌓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통산 364득점을 기록, 도루 성공은 대부분 득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고교 졸업 후 해마다 태극마크 달아
 
▲ 국가대표 시절 미국에서 군산상고 선배 김봉연 선수와 기념촬영     © 조종안

  
1974년 봄 군산상고를 졸업한 김일권은 그해 6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세계 아마야구선수권대회를 비롯해 1975년 몬트리올 대륙간컵 야구대회, 1976년 6월 네덜란드(할렘) 국제야구대회, 1976년 12월 콜롬비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1977년 니카라과 마나과 경기장에서 개최된 제3회 슈퍼월드컵(대륙간컵) 야구대회 등 해마다 국가대표(1974~1981)로 선발되어 중심타자로 활약한다.
 
1978년 네덜란드 국제초청야구대회(8월 13일~21일)에 출전한 그는 대회 9일째 경기(한국-호주)에서 3회 말 솔로 홈런을 터뜨려 승리(8-3)에 불씨를 당긴다. 한국, 일본, 호주, 네덜란드, 쿠바 등 5개국이 더블리그로 겨뤘던 대회에서 한국은 쿠바에 2연승을 거두는 등 2위를 차지했다. 한국 대표팀이 아마야구 최강으로 꼽히는 쿠바를 이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해(1978)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25회 세계선수권대회(8월 25일~9월 6일)에서도 승리의 주역이 된다. 리미니구장에서 열린 8차전(한국-니카라과). 한국은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7회까지 2-3으로 뒤졌다. 그러나 7회 말 장효조, 김재박, 배대웅의 연속 안타로 만든 1사 만루 찬스에서 주자일소 3루타를 작열시켜 전세를 5-3으로 뒤바꾼다. 이날 경기 결과는 한국의 통쾌한 역전승(6-3)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다.
 
당시 한국은 상위권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야구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벨기에, 캐나다, 니카라과, 일본, 이탈리아, 호주, 멕시코, 네덜란드 등을 연파하고 3위(8승 2패)에 오른다. 특히 한국은 일본을 역전승으로 물리치는데,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을 이긴 것은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 우승 이후 두 번째였다. 당시 대표팀은 두 대회를 통해 한국야구가 세계 수준이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1980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26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8월 22일~9월 5일)에서 도루 18개를 기록, 이 부문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신기록 보유자가 된다. 득점부문에서도 18점을 획득 2관왕을 차지한다. 그때까지 최다 도루 기록은 파나마의 밀러(11회)와 일본의 오바(大場勝: 20회)가 세운 14개였다. 타격에서도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4할 7푼 6리(전체 3위에 랭크)로 주최국 일본과 공동 준우승(9승 2패)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고향 팬들은 지금도 '도루왕'으로 기억 
  
1992년 현역에서 은퇴하고 쌍방울 레이더스 주루코치(1993~1995), 해태 타이거즈 주루코치(1996~1997), 현대 유니콘스 주루코치(1998), 삼성 라이온즈 주루코치(2002~2004), 야구 해설위원 등을 거쳐 얼마 전 판촉물 제조업체 (주)아이케이 코스모스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김일권을 만났다.
 
그가 그라운드를 누비던 1980년대는 프로야구 초창기로 한 시즌 경기 횟수가 요즘보다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프로통산 도루 기록(10시즌 363개)은 2014년 3월 현재 전체 6위를 마크한다.
 
놀라운 것은 7위 김주찬(12시즌 329개), 8위 유지현(11시즌 296개), 9위 김재박(11시즌 284개)보다 훨씬 앞서고, 5위 이순철(14시즌 371개)과 8개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통산 도루왕 5회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 군산 시내 옛날식 다방에서 만난 60~70대 야구팬들     © 조종안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틈만 보이면 뛰었던 선수. 사람들은 그를 '대도'(大盜)라 부른다. 프로 원년 '도루왕'이라며 '원조 대도'라 부르기도 한다. 대도는 '큰 도둑'이라는 뜻. 1루에서 2루, 3루를 훔치는 모습이 도깨비처럼 날쌔다고 해서 '괴도'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달인의 경지'에 오른 그의 주루 플레이는 관중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선수 유니폼을 벗은 지 어언 23년. 지금도 고향(전북 군산) 팬들은 그를 말할 때마다 '도루왕'을 앞세운다. 
  
"야구선수 김일권이말여? 왕년에 '도루왕'였잖여. 해태타이거즈 선수였을 때는 해마다 도루왕을 차지혔던 것으로 기억허는디… 하이간 군산상고 선수 때부터 키는 짝어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운동장을 지맘대로 날러댕기는(날아다니는) 갱까도리(날쌘돌이) 선수였지." 
  
"그렁게 말여, 안타든 볼넷(4구)이든 1루에만 나가믄 2루는 따 논 당상이었지. 야구장을 내 집 마당처럼 휘젓고 댕겼응게. 그려서 나는 군산상고나 해태가 지고 있을 때도 김일권이 안타를 치고 나가믄 마음이 놓였어. 무사(無死) 때 주자로 나가믄 최소한 1점은 올렸응게." 
 
"나는 김일권이 호랭이(해태) 유니폼 입고 금방 도루를 허는 것처럼 모숑(모션)을 쓰면서 상대 팀 투수와 포수를 놀리는 모습은 희열이라고 할까. 또 다른 재미를 느꼈지. 속이 상하다가도 도루를 성공허는 순간은 유쾌, 상쾌, 통쾌혔응게.(웃음) 내가 결혼허기 전부터 좋아혔던 선수였는디 요새는 뭐 허고 사는지 모르겠네. TV에도 안 나오고···."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다니는 달콤한 모닝커피 향과 예쁜 꽃무늬 커피잔이 조화를 이루는 군산의 옛날식 다방에서 만난 1960~1970대 야구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김일권에 대한 기억들이다. "김일권 선수는 '군산의 자존심'이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아저씨도 있었다. 
  
글러브를 끼면 힘이 솟고 동작도 빨라져

 
▲ 군산 남초등학교 아침조회 모습(1960년대)     © 조종안

  
김일권(59)은 전북 군산시 둔율동(골목동네)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직업은 교육 행정직 공무원. 겨우 가난은 면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성격은 내성적. 수줍음도 잘 탔다. 뒷집 심술쟁이 아이가 꼬집고 때려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과 다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턱 아래 흉 자국도 그때 흔적이란다. 그럼에도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아버지를 닮아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야트막한 노서산(老鼠山) 줄기를 중심으로 조성된 둔율동은 조선 시대 둔전(屯田)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둔배미', '군청고개' 등으로 불리었다. 지명에서 나타나듯 1950~1960년대만 해도 '도시속의 산골'로 여름이면 뒷산의 아름드리 고목들이 하늘을 가렸고, 겨울에는 천연 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었다. 특히 고갯마루의 둔율성당과 간장공장 앞마당은 아이들이 호연지기를 키우는 산실 노릇을 해주었다. 
 
"저는 1962년 군산 남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는 누가 짓궂게 굴어도 대들기는커녕 말도 못하는 순둥이였죠. 그래도 야구연습을 할 때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기가 솟고 동작도 빨라졌습니다. 4학년 때 특별활동을 통해 야구를 시작해서 투수와 3루수를 겸했는데, 그때부터 영호남 대회 2연패를 하는 등 운동장을 누볐죠. 뒷산(모시산)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고된 훈련도 투구와 타격연습을 생각하면 힘든 줄 몰랐으니까요." 
  
야구를 함께 시작했던 '스마일피처' 송상복씨는 "처음에는 일권이가 투수도 했던 것으로 아는데, 야구 감각도 뛰어나고, 순발력도 좋고,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해내는 등 특출한 친구였다"며 "어려움에 부닥친 동료들을 위해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는 등 희생정신도 강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말은 없지만, 소신과 주관이 뚜렷한 친구여서 가끔 손해를 볼 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남초등학교 야구부는 군산시내 4개 초등학교 중 가장 강팀으로 성장한다. 김일권, 송상복, 양종수, 조양연, 김기철 등 선수 11명의 연습을 눈여겨본 당시 전북 야구협회 이용일 회장과 군산 남중·상고 김병문 교장은 그들을 모두 1968년 창단한 군산 남중에 특기생으로 입학시킨다. 그중 김일권, 송상복, 양종수, 조양연 등은 3년 후 나란히 군산상고에 입학한다. 
  
"1971년 군산상고(야구부 4기)에 진학해서 3학년 선배들의 '줄빠따'(매타작) 때문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1, 2학년생들이 중국집에 모여 짜장면 한 그릇씩 먹고 도망가자고 모의를 했겠어요. 저는 서울로 튀었다가 사흘 만에 잡혀와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맞았죠(웃음). 
 
3학년 10명이 두 대씩, 스무 대 맞으니까 얼얼하더군요. 그렇게 매타작을 당하면서 '반항심'이랄까, 상대에게 모순점이 보이면 따지기도 하는 등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연습은 죽어라 했죠." 
  
군산상고 3학년 때 '이영민 타격상' 받아   
 
▲ 군산상고 시절을 회상하는 김일권     © 조종안
고된 연습과 선배들의 매타작을 투지와 뚝심으로 버텨낸 김일권은 2학년 때부터 1번 타자 자리를 굳힌다. 야구 전문가들에게 군산상고 간판타자로 인정도 받는다.
 
그에 화답하듯 시합 때마다 포문을 열면서 득점과 연결되는 장단타를 터뜨렸다. 안타를 치거나 4구를 골라 누상에 나가면 천부적인 주로 감각과 빠른 발로 상대 팀 마운드를 혼란에 빠뜨렸다.
 
전국고교야구 기존 판도를 뒤엎었던 1972년 황금사자기 대회 부산고와 결승전 9회 말 기적같이 일궈낸 역전 우승에도 기여하면서 고교야구 스타로 떠오른다. 그해 가을 일본 관서(關西) 지방에서 열린 한·일고교야구대항전(11월 11일~21일)에 한국고교 선발팀 일원으로 원정, 나라(奈良)팀과의 3차전 경기에서 도루 5개를 기록하는 등 호타준족의 기량을 과시한다.
 
1973년 군산상고는 전국규모 대회에서 4강에 한 번도 들지 못한다. 그해 5월 대통령배 대회에서 인천고와 11회 연장 끝에 4-5로 석패한 것을 비롯해 청룡기대회는 경남고에 1-3으로, 봉황기 대회는 전남고에 0-1로, 황금사자기 대회는 8강전에서 대전고에 4-5로 패하는 등 잇달아 고배를 마신다. 그러한 부진 속에서도 한국고교야구 대표팀에 선발되는 등 신기에 가까운 타력을 보여준다.
 
그는 1973년 12월 '이영민 타격상'을 받는다. 스승 최관수 감독이 동산고 시절 받았던 상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1958년 제정된 이영민 타격상은 대한야구협회가 매년 3회 이상 전국대회에 출전해서 30타석 이상 기록한 고교선수 가운데 타율이 가장 높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영예로운 상이다. 김일권은 그해 전국대회에 4회 출전, 41타수 17안타(타율 4할 1푼 5리)를 기록했다. 그는 당시 팬레터도 많이 받았었다며 1998년에 타계한 스승을 떠올렸다.
 
"최관수 감독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죠. 고급 전술과 타법을 터득한 것은 물론이고요. 지리멸렬했던 팀을 국내 정상 수준으로 올려놓은 지도력,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등이 놀라웠죠. 특히 '한문과 주산은 꼭 배워두라!'는 당부는 잊지 못합니다. 그때 배운 실력이 지금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거든요. 가끔 옛 모습이 떠오르면서 건강하셨으면 해태 타이거즈 초대 감독을 맡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프로야구가 없던 1973년. 그해 국내 고등학교와 대학 졸업반 야구선수는 모두 235명(고교 216명, 대학19명)이었다. 하지만 한 해 동안 각종 대회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대학과 실업팀 스카우트 대상에 오른 선수는 고작 50명 안팎이었다. 따라서 170명 정도는 새로운 진로를 찾지 못하면 선수생활을 그만두어야 했다. 한편 김일권은 고려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놓고 있었다. (계속)
 
자료출처: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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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nata 2014/08/18 [08:54]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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