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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역사의 원점과 본향 찾는 자들
 
이기영 전남노회 원로목사 기사입력  2014/02/06 [05:58]
1 시작하는 말
 
설 명절을 마자 수많은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조상들에게 배례하고 가족들과 친지들과의 반가운 환대와 어른들께 세배 뒤의 덕담을 하며 음식 나누어 먹기, 즐거운 시간이겠지요. 하지만 덕담이 길어지며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뼈있는 조언과 우려도 따르겠지요. 고향을 찾는 일과 본향을 찾는다는 그 신앙적 의미도 성찰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 제사에 대한 한 왕의 이야기
 
은나라의 성탕왕은 동이인으로서 산동반도를 거쳐 중국의 성군이 된 사람인데, 그 나라에 큰 가뭄이 7년이나 계속되어 농사가 하나도 되지 않았습니다. 태사가 점을 쳐 보고 하는 말이, 사람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하늘에 빌라고 하였습니다.
 
성탕왕이 말하기를 “내가 백성을 위해 있고, 백성을 위해 하늘에 빌고자 하는데, 구태여 그래야 한다면 내 몸으로 백성의 목숨을 대신하리라” 하였다고 합니다.
 
성탕왕은 목욕 재계하고 손톱을 깎고, 머리를 자르고, 상여 마차에 흰말을 매고, 몸에 흰 거적을 두르고 몸으로 제물 삼아 상림들의 제단 앞에 꿇어 앉았습니다.
 
여섯 가지의 일을 들어 스스로 자기를 반성하고 책망합니다. “1)정사를 절도 없이 했습니까? 2)백성이 직업을 잃었습니까? 3)궁실을 화려하게 지었습니까? 4)궁녀들을 가까이 했습니까? 5)뇌물을 받았습니까? 6)남을 해치려고 거짓 증거하는 사람을 등용 했습니까?”
 
이 말을 끝내자 마자 큰 비가 수 천리에 퍼부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제사행위에 대한 하나의 표출이었습니다. 제사는 단순한 이기적 욕구나 간구가 아니라 하늘이 내게 원하시는 조건에 대한 응답입니다.
 
3 한국민족의 역사와 그 원점을 찾아서
 
한국민족의 역사의 원점은 무엇입니까?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환단 시대를 민족의 원점으로 설정합니다. 환단 시대는 한국민족과 한국문화의 원점일 뿐만이 아니라, 동양문화, 수메르 문화의 원점이기도 합니다. 한국민족은 종교적인 민족입니다. 환단 시대는 신정시대였으니, 그 신관 또한 고등종교와 같은 경지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환단 시대의 윤리는 신률에 속한 것입니다. 단군의 다섯 계명을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정성스럽고 믿어서 거짓이 없을 것. 2)경건하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을 것. 3)효성스럽고 순종하여 어기지 않을 것. 4)염치가 있고 의로와 음란하지 않을 것. 5)겸손하고 화목하여 싸우지 않을 것.” <단군본기, 태백일사>
 
모세 오경에 십계명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빼면 인간끼리의 계명은 여섯 계명이 됩니다. 단군의 계명은 순 인간관계만을 다섯 항목으로 기록하여, 주로 개인윤리와 이웃윤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일곱을 완전수로 다루지만, 동양에서는 다섯을 완전수로 여깁니다. 빛깔도 청,황,적,백,흑을 오색이라고 합니다. 맛도 단것, 짠것, 신것, 매운것, 쓴것이 곧 그것입니다. 음악곡조도 오음, 즉 궁상각치우의 다섯 음계를 만들었습니다. 방향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이고, 곡식 또한 오곡이라고 하며, 도덕도 오륜입니다.
 
단군이 오계를 선포했다는 것도 환단 시대의 원점에서 샘솟는 우리민족윤리의 원형이라 하겠습니다. 서양역사가 폭력주의 역사라면 한국역사는 윤리를 심장으로 한 진인의 역사라도 무방할 것입니다. 환단 시대를 원점으로 한 시각에서 하는 말입니다.
 
환단 시대의 관할지역과 그 문화권은 광대했다고 합니다.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그리고 수메르 문명의 모체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는  우리 환단 고어에서 ‘소’란 말이고 ‘수메르’는 ‘소머리 문명’의 우리말인 ‘소머리’입니다.
 
단군 왕국의 수도 ‘아사달’은 송화강변의 ‘할빈’이라고 합니다. 송화강을 소머리강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천지에서 송화강이 흘러내려와 지금의 만주 벌판에서 우리민족의 젖줄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상고사와 원점을 환단 시대에 두었고, 우리 민족이 단군을 민족의 할아버지라고 믿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요, 종교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환웅이 데리고 온 부하 삼천 명은 어중이 떠중이가 아닌, 가장 우수한 전문지도자들이었을 것입니다. “풍백, 우사, 운사(기상학자였을 것)를 거느리고 식량과 생명, 형벌, 질병, 선악을 주관하시매,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의 일들을 주관하셨습니다. 세상에 계실 때 홍익인간의 도리로써 교화하셨습니다.”-<삼성기>하편, 원동중 찬.
 
그러나 그 수많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은 하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교화, 이화하여 홍익인간, 즉 광범위한 인간화에 초점을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향에서 우리 민족 상고 역사의 원점을 단군 왕조, 즉 환단 시대에 두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민족의 성격이 옹졸해지거나, 무기력하거나, 비젼을 잃거나, 민족 생명의 노쇠를 초래하는 등의 망조를 초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고토를 도로 찾겠다는 군사적, 정치적인 침략 근성을 고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환단 상고사의 높고 넓은 윤리적 역사를 세계에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선을 위해 바르게 잃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영광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데에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좁고 험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점에 돌아가 새 역사 창조의 새 출발을 시도하는 그것입니다. 원점에 돌아간다는 것과 새로 출발한다는 것은 진리를 따라, 돌이켜 새 역사의 길을 걷는 그것입니다. (“한국 역사와 그 원점”, 김재준 전집, 18, 228-247 참조)
 
따라서 우리 민족의 자주성이라는 척도에 따라서 고구려의 자주정신, 나라의 자주를 위해서 중국과 일대일로 대결한 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 등을 민족정신의 효시로 잡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은 한국인의 자주성과 한국역사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우리민족과 우리역사는 외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위축일로를 걸었다는 역사관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가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것을 김재준 목사님은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 뒤로 고려와 조선조 그리고 일제강점과 그 이후 미국지배 등 일련의 역사는 민족의 자주성과 민족정기의 위축의 일로였다는 것이 그분의 역사관찰입니다.
 
 

 

4 생명의 본향을 찾는다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음력 설, 민속의 절기에 고향을 찾아가는 분주한 그러면서도 즐겁고 벅찬 모습의 사람들의 발 걸음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의 원점인 본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육신의 몸둥이가 태어난 산천의 고향을 넘어서 우리 생명의 영원한 본향을 그리워하고 찾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육신의 고향을 찾는 것은 생명의 본향을 찾는 것, 신앙과 희망, 나아가 사랑의 고향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원점, 생명이 돌아갈 영원한 본향은 어디이고 그곳은 어디에 있으며, 그 본향에는 누가 있어서 우리를 기다리기에 인간은 본향을 찾아 나그네의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일까요? 신약성서의 본문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살다가 가신 신앙인들의 행적입니다. 구약성서 본문 역시 고향을 찾아가는 야곱의 신앙적 결투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오늘 우리인간의 삶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속에서 갑자기 솟아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요, 따라서 사람은 역사흐름의 물줄기 속에서 비로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서는 모두 역사이야기입니다. 역사를 모르고서는 나와 우리의 오늘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른 역사교육은 우리민족의 사활을 좌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왜곡의 안타까움을 통탄합니다. 역사교육을 소흘리 하는 백성은 망하고 맙니다. 사람의 뿌리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2)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 조상들의 옛이야기를 반복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그 역사의 옛이야기가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의 사람들에게 갖는 뜻을 되새겨 묻는 것입니다. 사실 조용히 생각하면 조상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을 살아가는 그 후손들의 생명과 마음속에 살아서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실들은 오늘 현재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생명과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과거를 이어온 조상들의 피땀과 노력의 결실인 것입니다.
 
3) 역사와 조상들을 이야기하는 것,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족장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핏줄을 확인하려는 인간적 동기가 아니라, 그들을 불러서 약속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경륜을 증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입주한 일, 이스라엘 족속의 애굽 피난과 민족 형성과 십계명의 계약을 받은 일이 모두 구원사건입니다. 성서는 바로 이 구원의 역사와 구원하시는 주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4)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이 외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고 종이 되어 학대 받고 고난 속에 시달릴 때 그들을 찾아 구원해 주시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며 종살이 속에서 시달릴 때, 어머니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심 같이 말할 수 없는 아픈 마음으로 인간과 피조물 속에 깊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본성, 곧 긍휼과 자비와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증언해 줍니다.
 
5 구원의 역사와 일반의 역사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옛 이스라엘 조상의 이야기와 오늘 우리의 삶과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만주 벌판과 한반도에 들어와서 고난의 역사를 헤쳐오면서 살아오신 우리 조상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과 또 그들과 관계된 옛이야기와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육신의 후손이 아니라 믿음의 씨앗으로 거듭난 아브라함의 후손, 곧 믿음의 씨앗을 말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육정으로나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 받고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믿음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혈통적인 이스라엘 백성 못지않게 한 피를 나눈 우리 한민족은 고난과 종살이와 역경의 역사 속을 헤쳐 왔습니다. 지금의 우리민족은 절대빈곤의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수 천년 간 우리 조상들은 가난과 배고픔, 정치적 억압과 외국의 침입, 식민 종살이와 국제 열강들의 말 발굽에 찢기고 고통 당했으며, 심지어 이름과 성씨까지 바꾸고 전쟁터에 끌려가거나 정신대로 불려 나갔고 급기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민족을 수난의 풀무 불 속에 연단하심은 세계구원의 특별한 섭리가 이 우리 한 민족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남북으로 나누이듯이,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서로 장자직분을 놓고 다투듯이, 또한 에스겔의 환상처럼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하나의 막대기로 연결되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세계구원의 섭리그릇으로 선택 되듯이, 우리 한 민족은 아시아와 세계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로 선택 받았으며,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6. 믿음의 영원한 본향은 생명과 빛, 사랑이 다스리는 영생의 나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의 눈을 들어 고향을 찾는 우리민족의 대이동을 향해 신앙의 방향과 말씀의 핵심을 제시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대로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늘의 본향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궁극적 본향이요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들어갈 고향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계시된 생명의 길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원점이요, 우리의 참 본향은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설 명절을 맞아 조상의 무덤을 찾아 성묘한다 해도 땅의 질서 속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길 잃은 나그네이고, 고향을 잃은 탕자들입니다. 그러나 길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길 되시고 탕자인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은혜를 모르고 헤매던 우리백성에게 독생자의 복음을 빛으로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잇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설 명절을 맞아서 다음 세가지를 자각하고 믿음으로 고백함이 좋겠습니다.
 
1) 우리 믿는 자들의 순례길, 여행길, 고향 찾는 발걸음은 향방 없는 것도 아니요 단순히 혈육의 고향산천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영원한 본향,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신 생명의 나라, 빛의 나라, 영생의 나라를 찾아 가는 길이라는 자각입니다.
 
2) 오늘 우리의 삶이 가능함은 우리 조상들의 피 땀 어린 노력과 애씀, 그들의 고난과 시련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하셔서 우리조상과 민족을 하나님의 섭리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라는 은혜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민족은 가인의 혈육적 원리 즉 이기심, 난폭함, 교만, 탐심, 살육, 혈기로 살려 한다면 모두 망할 것이요, 아벨의 성령적 원리 곧 사랑과 섬김과 겸손과 예배와 봉사와 형제우애의 정신으로 산다면 축복받고 하나님의 세계경륜의 그릇과 도구로 선택될 것이라는 신앙고백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3) 설 명절은 원단이라 하여 부모형제가 하나되고 화목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축복의 날입니다. 서로 장자의 축복 권을 독차지하려고 에서와 야곱이 20여 년을 으르렁거리듯, 우리민족은 그보다 세배나 더 긴 세월 동안 남과 북이 서로 장자 권을 주장하며 갈라져 싸워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역사에 새로운 전기가 왔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서로 만나 서로 껴안고 용서하고 형제애를 확인하면서 서로 울었듯이, 남과 북은 한 형제로 화해하고 교류하고 협력하여 평화와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7. 결론: 신앙의 재 각성과 새 사람이 된 브니엘의 체험
 
여기에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적 통일의 차원을 넘어서서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들의 정통성을 계승할 수 있는가는 신앙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얍복강의 나룻터에서 밤새도록 환도뼈가 위골되는 씨름을 하면서 야곱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받는 경험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야곱’이라는 말 뜻은 속이는 자, 영리하고 꾀 많은 사람의 상징입니다.
 
세상을 계산과 요령과 잔 꾀로 살아가는 자기중심적 삶의 인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과 겨름을 뜻합니다. 곧 믿음, 용기, 끈질김, 진지함, 성실, 진실의 뜻이 담긴 삶의 인간원형을 말합니다.
 
야곱은 밤새도록 씨름하고 환도뼈가 위골되어 절둑 거리면서도 아침 해가 돋을 때 얍복강을 건너 명실공히 약속의 땅에 들어 감을 허락 받았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에 아하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구나! 하나님의 축복을 입었구나! 라는 신앙적 깨달음 곧 ‘브니엘’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겨레가 응답의 메아리 없는 고향산천을 찾아 성묘하는 혈육의 차원을 넘어 은혜의 눈을 떠서 브니엘의 체험을 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시다.
 
설 명절을 한번 더 지냄으로 우리 신앙인의 영의 눈이 더 밝아지고 속 사람이 성숙해져서 영생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사랑의 높이와 깊이, 넓이와 길이를 깨닫는 브니엘의 축복의 아침, 벧엘의 가정제단을 쌓는 복된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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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2/06 [05:58]  최종편집: ⓒ christia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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