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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추수감사절' vs 인디언 '통곡의 날'
[목회자 칼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Thank to Grace of God'
 
이기영 목사 기사입력  2013/11/23 [04:31]

11월 셋째 주일에 드리는 추수감사절 축제가 시작되면 미국인들은 3,500만명의 귀성인파가 고향을 향하여 행진을 하고,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칠면조 파티를 합니다. 한국도 미국의 추수감사절처럼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축제분위기를 일으키고, 고향을 찾고 잔치를 하는 명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추석’입니다.
 
교회생활에 충실한 사람들도 추석과 주일이 겹치면, 교회를 떠나 고향으로 갈 정도로 추석은 온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절입니다. 축제와 감사가 살아있고,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사절예배는 미국인의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한국인의 ‘추석감사절’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70-80년대부터 추석이 한국교회의 감사절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문화를 소중하게 여기고,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추석명절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한국교회의 감사절은 ‘추수감사절’보다 ‘추석감사절’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1492년 10월 12일 카리브해의 바하마 제도에 속한 섬에 도착한 이래 콜럼버스는 오랫동안 역사속에서 영웅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호적으로 대해 온 인디언들에게 오히려 칼을 겨누고 그들 고유의 문화를 파괴한 것은 유럽인들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멕시코 지역의 아스텍 문명과 남미의 잉카문명을 파괴하였습니다. 1620년 필그림스 믿음의 조상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하여 감사절을 지낸 후 350년째인 1970년 추수감사절에 인디언들이 몰려와 이 날을 ‘통곡의 날’(Day of Mourning)로 선포하며 항의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감사절 때마다 인디언들의 항의 시위는 해가 갈수록 그 수도 늘어가고 열기도 높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감사절의 유적지를 찾는 많은 순례자나 관광객들은 실망하고 언짢아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디언의 ‘통곡의 날’ 항의 시위는 뜻있는 미국 그리스도인 후예나 미국인들에게 필그림스 청교도들의 플리머스 도착과 그들이 시작한 감사절을 추수감사절의 시작으로 보는 일을 반성케 하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백인들이 미대륙에 도착하기 전 멕시코 이북의 북미 인디언 인구를 1천만 내지 1천 2백만으로 추산하며, 250여년 뒤인 1890년에 그 인구는 23만 정도라고 했습니다. 미대륙 백인 조상과 인디언의 투쟁, 아니 백인들의 인디언 말살 정책이 얼마나 잔혹 했던가를 상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본다면, 우리는 프리머스 필그림스 청교도들의 감사절 연원으로부터 추수감사절을 해방시켜야 함이 옳습니다. 청교도들의 감사절 유래보다는 벌써 수천년 전, 신 구약 성서에 이스라엘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던 역사에 기원하여, 하나님의 온갖 크신 은혜에 복귀하는 감사절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필그림스의 청교도들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고 땅과 하늘, 해와 물, 온갖 곡물과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때, 적대의 감정이나 그 동안 저질러진 백인의 인디언에 대한 죄책의 참회의 뜻도 포함되기에, 이런 감사절만이 ‘통곡의 날’을 치유하는 새로운 감사절로 변하게 하리라 믿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히브리(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 가서 살다가 후에 애굽의 정권이 교체되자 애굽 사람들로부터 탄압과 억압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호소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애굽에서 동족을 탈출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도록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목축업과 함께 농사를 배워 농사를 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은 첫 추수를 하나님께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내용이 신명기 본문에 나옵니다. 각종 햇곡식을 광주리에 담아 예배를 집례하는 제사장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이를 받아 하나님의 제단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아뢰는 신앙고백을 했는데, 신명기 26장 5- 9절을 학자들은 이를 ‘옛 신앙고백’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앙고백을 한 다음에, 온갖 햇곡식을 먹고 즐길 때 레위인과 거류하는 객과 함께 먹고 즐기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의 연속이었습니다. 옮겨 다니고 이사하는 떠돌아 다니고 해매고 다닌 방랑자, 나그네의 삶을 이어 왔습니다. 사막과 광야를 해매고 유리 방황해 온 아픔의 역사를 체험한 민족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약 4천 년에 걸쳐서 12개의 강대국 민족의 침략을 받아 고생한 방랑의 나그네 생활을 해 왔습니다. 애굽,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비잔틴제국, 아랍권, 십자군, 또다시 아랍인, 터키, 영국 등의 민족들에 의하여 점령, 포로, 강제이주, 피난이주, 학살, 약탈 등을 당해 왔다고 보면, 떠돌이들의 흩어지고 피난 가고 정착했다가 또 잡혀가고 헤어지고 죽고 하는 수난의 악순환의 역사를 걸어온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오늘의 유대인들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에 의한 아우스빗취에서 6백만의 대학살(Holocaust)이라는 이 나그네들의 민족의 수난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고난의 연속의 역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삼기 위하여 특별히 훈련시킨 민족역사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사를 보면 그러한 유리방황 유랑생활을 해 오면서도 이른바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신앙을 계속 이어온 신앙의 역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평화롭고 안정된 때에만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항상 위험과 불안과 혼미한 상황 속에서 의로운 싸움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켜온 예언자들의 신앙전승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민족을 구원해 주셨고 또 구원해 주신다는 확신을 유지하고 전승하면서 떠돌이 같은 나그네들의 감사예배를 드리는 전통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기에 감사라는 것은 고생과 수난의 삶 속에서 진행되고 이어져 간 것입니다. 
 
수천년 역사에 걸쳐서, 우리 한국 민족은 외국으로부터 976회나 침략을 받은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1998년 9월 5일자 <타임>(Time)지에 “남한”이란 특집). 돌이켜 보면, 한국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고난의 역사! 한국역사의 밑에 숨어 흐르는 바닥의 가락은 고난이 주제입니다. 이 땅도, 이 땅의 사람도, 큰 일도, 작은 일도, 정치와 종교, 예술과 사상도 다 고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위치한 지정학적으로 보아도 이미 결정된 한국역사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을지,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민족 역사의 변천에서 고난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난의 역사 가운데서 진리와 고난의 의미를 보여 줍니다.
 
한반도 세 면에서 보면 세 세력에 두루 싸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쪽의 중국과 북쪽의 만주와 러시아와 동쪽의 일본입니다. 이 위치는 마치 능동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라면 동북아를 뒤흔드는 중심이요 다스리는 서울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억세지 못한 자가 그 자리에 선다면 그때는 수난과 압박의 위치가 될 수 밖에 없겠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불행히도 후자의 것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고대, 중세는 생략하더라도 현대사에서 겪어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일제의 침략과 강제징집, 동원을 비롯하여 8. 15 이후의 남북분단과 6. 25 전쟁으로 인한 행방불명과 피난, 가족 이산 등을 따져 볼 때, 오늘 우리 모두도 살아남은 나그네들의 후예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추수의 계절, 11월을 맞아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나와서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나그네들이었지만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여 출애굽의 해방과 구원을 얻은 것에 대한 감사의 신앙고백을 했던 것 같이, 우리 한국인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복음이 들어왔고 믿음으로 민족의 해방과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된 우리의 처지에서도 감사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을 회고해 볼 때도 집을 옮기고 직업을 바꾸고 또 어떤 이는 이민을 가서 살면서 여러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오늘이 있게 해 주신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적이며 육적으로 방황하면서 나그네 같은 삶이었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 신앙과 삶의 변화를 체험했다면 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70, 80년대 인권회복과 민주주의 실현 (민주화 회복기)와 90년대 이후 민족의 일치와 화해 (평화통일 실현, 남북개선)에 40여 년을 보내면서, 약속의 땅을 향한 40여 년의 히브리(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과 연계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모세오경이나 성문서, 예언서들은 물론이고 신약성서에도 하나님을 향한 그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송은 넘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도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도록 일깨우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감사는 신앙의 척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또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깊이 뉘우치며 감사해야 할 일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오늘과 같이 온 세계가 살기 어려운 세월을 살면서, 세계에 가장 부강한 나라에 살고 있는 자들로서는 한국도 포함하여 그 어떠한 형편에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몸에 걸칠 것, 지붕을 덮은 곳에서의 잠잘 곳이 있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75%이상의 부요한자입니다. 은행에 돈이 있고 지갑에 현금이 있으며 집의 어디에든 잔돈이 있다면 지구의 부요한 자들의 상위 8%에 해당 합니다.
 
아침에 건강하게 일어나고 병이 없다면 이 한 주간에도 살아 남지 못하는 백만인 보다 운이 좋은 자입니다. 전쟁의 위험이나 감옥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또는 굶주림의 처절함을 오늘 경험하고 있지 않다면 이 세계 5억인들 보다 행복한자입니다. 만약 위협 구금 고문이나 죽음의 위험 없이 자유스럽게 예배 드리거나 종교활동을 할 수 있는 자라면 축복된 자입니다.
 
지구상의 수십억 인구에게 아직도 이런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축복을 계산하고 명단을 작성하자면 아직도 한이 없겠습니다. 가족 친구들 의식주와 자동차 건강과 일터 자유와 기회 작은 아파트라도 상하수도 냉 온방에 침대 욕실 샤워대까지 가진 상태입니다.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을 다 가지고 있으나, 우리는 아직도 고마움 보다는 불만과 짜증이 더 많은 것은 어찌된 연고입니까?
 
그러나 우리의 감사가 잘살고 성공하고 만사형통해서 감사하는 것이라면 이는 온전한 감사일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없는 경우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언제나 듣고 읽어도 아름답고 공감이 가는 감사정신을 일깨우는 하박국의 고백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에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둘 것 없고 우리와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어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리라”(합 3:17- 18).
 
생떽쥐빼리(Antoine de Saint-Exupery)의 고전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에 한 교활한 친구가 왕자와 작별하며 비밀을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 나의 비밀, 아주 간단한 비밀 하나가 있습니다. 사람이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슴으로만 가능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왕자는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는 말을 반복하며 마음에 간직 합니다. 이는 바울이 이미 터득한 진리와 같은 맥을 갖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4: 18).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아무리 가져도 충분하지 않아 끝없이 더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문화, 영원한 불만족의 딱지가 붙은 문화에서, 창조주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급진적인 감사’를 그 특징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불만족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돈의 문화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죄가 우리 속에 그 형체를 드러내고, 우리의 습관을 좌우하며, 우리를 포로로 사로잡고 있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깊이 체험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창조에 대하여, 우리가 받은 생명의 선물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구속과 평화에 대하여-만이 감사할 줄 모르는 문화와 그 영향력을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결코 보석이나 돈, 가죽 옷이나 값비싼 물건들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으며, 오직 본질적이고 영원한 것들 즉 믿음 사랑 지혜의 영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같은 것이 귀함을 알고 그런 것들을 위해 살며 그런 유산을 우리에게 전해주려 애썼습니다.
 
이런 본질적인 귀함을 알고 깨닫게 될 때 그 위력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부귀영화 같은 이 모든 것을 분토 같이 여기며 그리스도가 보여주시고 가르친 그 영원한 것을 향해 진력할 뿐이라 고백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왜 소수집단인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공인 종교가 되었는가에 대해 연구한바 있습니다. 토인비에 의하면 인명존중이요, 형제사랑이요, 이웃에 대한 관심이라 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은 물론이고 이방사람들도 형제로 대하고 그들을 따뜻하게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사랑하는 삶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다시 형제가 되고 이웃이 되는 길은 사랑의 친교, 코이노니아의 회복인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와 형제애, 평화의 새날을 이루어 낼 것이라는 남북간의 공존과 동포애, 관심으로 소통되고 평화의 감사제가 일어나는 꿈을 꾸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거스틴의 저서에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성도의 사귐을 하다가 해어질 때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이것이 한 인사처럼 되었다고 전해 줍니다. 어떤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만나서 억울한 이야기 핍박 당하는 이야기 순교 당하는 이야기 등을 하다가도 마지막 해어질 때에는 우리 ‘하나님 앞에 감사합시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 신앙인들은 감사를 생활화 하였습니다.
 
사실 감사절은 어느 한 날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process)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인들이 광야를 여행하고 가나안을 향해 움직이던 나그네의 길과도 같이 끊임없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루만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과 표현이 범사에 나타나야 합니다.
 
동시에 어떤 은혜를 받으면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감사는 다른 감사를 낳고, 작은 감사는 큰 감사를 가져오며, 그런 감사의 자세는 온 나라 모든 백성에게 돌아 옵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 어떤 외적인 조건이나 소유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사(Thanks for Nothing)입니다.
 
우리교회는 지금 신앙순례자로서 견디기 힘든 역사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갖고 눈을 들어 새로운 비젼(vision)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조상들의 대열과 한국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지켜주신 하나님께 뜻있고 정성된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본연의 상(image)을 찾기 위해 더욱 힘있게 결속하고 하나되어 새 출발을 다짐하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절기에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풍족히 임하기를 기원 합니다.         
  

[출처 :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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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23 [04:31]  최종편집: ⓒ christia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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