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수지리
토기장이들은 풍수지리를 배우는 것이 가문의 전통이었습니다. 토기장이들이 토기 공장을 세우기 위해서는 몇 가지 풍수지리를 고려해야 합니다.
토기 공장의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도시 근교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토기를 만드는 찰흙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화목으로 사용할 소나무와 잡목이 울창한 산림이 인접한 곳이어야 합니다. 또한 교통이 좋아야 하며, 양지바른 곳이어야 하고, 작은 구릉이 형성된 곳이어야 합니다.
허병주 박사의 부친은 가문의 맏아들이었고, 할아버지를 모시는 집안이었습니다. 허덕수 장로는 장남이었고, 허덕만 장로는 차남이었습니다. 엄한 조부모를 모시는 가운데 허덕수 장로는 장남으로서 손색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허덕수 장로는 도자기를 직접 만드시는 분이었고, 허덕만 장로는 활동적인 성향으로 도시를 다니던 인텔리였습니다. 집안에서 허덕만 장로는 차남으로서 다소 소외되어 있었던 분이셨습니다.
조부 허상민, 일명 허동포 씨는 허덕만 장로를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허덕만 장로는 형 허덕수 장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형님, 제가 꿈에 황금산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노회에 다녀오는 길에 그 꿈에서 보았던 황금산이 실제로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침 사랑의 원자탄이신 손양원 목사님이 세우신 교회 근처였고, 그 주변에 황금산이 있었습니다. 가보니 옹기를 만들 수 있는 찰흙이 가득 있었고, 작은 산과 밭을 판다고 합니다. 형님께서 가보시고 그 땅을 좀 사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맏형 허덕수 장로는 울산 남창교회 인근 굴만댕이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매입하시고, 옹기를 굽는 가마를 직접 제작하여 옹기 공장을 세우셨습니다.
이때 사용된 가마는 칸가마 방식으로, 허덕수 장로께서 고안한 일명 ‘노부리 가마’였습니다. 과거에는 대포굴이라는 거대한 옹기 가마가 있었는데, 트럭 수십 대 분량의 옹기를 한꺼번에 구워내다가 한 번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허덕수 장로께서는 세계 최초로 이글루 형태의 흙벽돌 칸가마를 개별적으로 제작하셨고, 십여 개에서 십오 개의 칸가마를 연이어 만들어 항아리를 굽는 방식을 개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특수 가마인 ‘노부리 가마’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옹기 공장이 오늘날 기네스북에 오른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허병주 박사는 이 사실을 아버지께 상세히 들으며 성장하였고, 외고산 옹기마을과 얽힌 가문의 슬픈 이야기 또한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일부 장로들은 허덕수 장로와 허덕만 장로, 그리고 허동포 가문의 위대한 업적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근거 없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명예를 쌓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울산시는 외고산 옹기마을을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며 매년 5월 초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이 본질보다 형식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가운데 옹기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한 관장님께서 허병주 박사를 반갑게 맞이하시며 책을 기증하고 “설립자의 아들을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신 일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허덕만 장로의 대를 이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가문에 큰 누를 끼친 인물로 유산을 혼자 독식하였고, 딸들에게는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딸들은 지금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이를 바라보는 허병주 박사는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문화재 등의 명예를 누리고 있는 일부 인사들 가운데에는 허덕만 장로의 유산을 둘러싼 부정행위에 가담한 이들도 있으며, 이러한 현실은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는 듯한 안타까움을 줍니다.
허병주 박사는 흙과 함께 살아온 사람으로, 흙의 혼합과 성질을 보며 모든 존재에는 탄생과 생존, 그리고 사멸의 과정이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이 걸어온 발자취는 이제 인터넷과 AI에 그대로 기록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을 거쳐 장관이 되기 위해 청문회에 서게 되면, 왜 그토록 많은 문제들이 드러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흙은 거짓을 담지 않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흙은 그 역할을 다하고, 농사에 쓰이는 흙은 생명을 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지켜야 합니다.
허덕수 장로는 자신이 세운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생을 마쳤으며, 허병주 박사가 직접 부친의 시신을 운구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제2신앙촌 인근에 안장하였습니다. 그 산소 자리 역시 허병주 박사가 가문의 풍수지리에 따라 정한 것입니다. 그 이후 그의 맏아들은 한국에서 로켓 발사 연료 분야의 1호 박사의기반을 닦은 세계적인 공학박사가 되었고, 허병주 박사의 동생은 사법·행정고시양과에 합격하였으며, 성적 또한 수석에 가까울 정도로 우수하여 검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허병주 박사는 세계적인 선교학 박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 이 사실을 알고 어떤 사람이 명당을 잡아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허병주 박사의 담임 교회에 10억 원을 헌금하라”는 말에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간 일도 있었습니다. <저작권자 ⓒ 국제기독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목회/신앙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