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를 통해 본 동아시아의 교훈

류재복 기자 | 기사입력 2015/12/29 [09:29]

철도를 통해 본 동아시아의 교훈

류재복 기자 | 입력 : 2015/12/29 [09:29]


 
 
19세기말, 20세기 초반에 걸쳐 세계 여러 곳에서 변화의 파고가 밀려왔다. 특히 1830년 초 수운과 마차를 대신하여 출현한 철도혁명은 속도 면에서 교통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말과 수운에 의존하였던 운송이 이제 증기라는 새로운 동력으로 빠른 속도를 통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경제활동의 영역도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등의 제한으로 자급자족경제에 머물렀지만 이제 활발한 물자 교류를 통해 가격도 저렴해졌고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었다. 1862년 미국 대륙횡단철도건설의 시작도 그러한 예의 하나이다. 철도를 통해 공간과 시간의 지도는 다시 작성되었다.

철도의 출현은 근대 서구에 있어서는 산업혁명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양사회에서는 근대화를 견인하였다.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와 산업화는 서구문명 우월주의, 새로운 시장개척, 미개한 지역의 개화라는 제국주의 명분을 통해 급속히 동양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을 통해 강력한 서구의 힘을 경험하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유럽각국은 앞을 다투어 동양에 진출하게 되었고, 철도는 첨병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영국이 식민지인 인도에 철도를 건설한 것도 그러한 예이기도 하다.

그 주요한 예로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시베리아 철도는 1905년에 완성되었는데 구간은 모스크바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9,289km였다. 궤간은 1520mm의 광궤로 모스크바로부터 폴란드, 슬로바키아, 독일, 프랑스까지 연결되었고 당시 동청철도를 통해 하얼빈과 당시 만주 그리고 한반도, 일본까지 철도로 연결되었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는 1894년의 청일전쟁으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5년 러일전쟁으로 일본은 한반도를 시작으로 대륙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철도는 그 중심의 하나였다. 시베리아철도와 동청철도와 만주철도를 둘러싼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었다. 러시아와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이 동아시아의 철도주도권을 놓고 경쟁하였다.

그러나 이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철도를 우리 손으로 건설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유길준은 호남철도주식회사, 박기종은 대한철도주식회사, 이용익은 경의선 철도를 우리자본과 기술로 건설하려고 하였다. 호남철도주식회사의 취지문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철도는 전신, 체신, 신문, 기선과 함께 국가의 5대기관이며 문명과 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중요한 수단이다. 그간 외세가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있어 우리의 독립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철도를 부설하여야 하므로 이에 호남철도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1908년 2월3일 대표 장박, 유길준, 최문식」

후에 우리는 제국주의의 힘을 경험하게 되고 이후 철도는 전쟁 수송에도 이용되었다. 냉전의 시기를 지나 이제 경제협력과 최근 각국 간의 경쟁이 치열해 지는 시기가 이어서면서 동아시아는 19세기말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동아시아와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노력이 치열해 지고 있다. 각국은 특히 대륙을 연결하는 철도의 이니셔티브를 잡으려고 하고 있다.

역사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함께 전망해 볼 수 있다. 특히 19세기말과 유사하게 전개되는 최근의 상황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당시의 상황을 조명해 보면 우리는 현재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국력이기는 하지만 당시 국제정세를 볼 때 각국의 철도를 둘러싼 구체적인 정책과 이를 추진하기 위한 조직과 연구 등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상대국의 정세를 철저히 분석하여 조사 자료를 축적하고 경쟁우위에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최고속력을 가진 차량을 개발하였고, 항만과 철도를 연결하는 인프라를 건설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둘째, 해외자료 등도 입수하여 분석하고 「관련된 사전」을 만들 정도로 지식을 축척하고 이를 집적하였다. 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최소한 30년 이상의 향후 전망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분석하고 이를 신중하게 추진하였다.

셋째, 정부와 학자 그리고 기업 간의 끊임없는 공동 논의와 모임 등을 가지고 대비하였다. 여러 가지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수시로 접촉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넷째, 구체적인 이니셔티브의 구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국제 열차운행을 통해 각국을 연결하는 노력을 계속 시도하였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나진, 선봉지역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나진을 통해 포항까지 오고 있는 러시아 유연탄의 수송 등의 사례는 매우 시사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향후 이 지역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역사의 검증을 통해 당시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 간과하고 있는 것이 없는지를 좀 더 살펴보고 후손들이 볼 때 부끄러움이 없는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글쓴이 / 이용상
우송대학교 철도경영학과 교수.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정책실장과 한국철도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외국인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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