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예배, 목회자 혼자만 부르는 찬송

신흥식 충남노회 평지 목사 | 기사입력 2014/04/05 [04:01]

발인예배, 목회자 혼자만 부르는 찬송

신흥식 충남노회 평지 목사 | 입력 : 2014/04/05 [04:01]
뜻밖에 들려온 소식. 왕년의 그 두목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다. 무슨 일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장례식장으로 가보니, 철모르는 아들과 딸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아직 사람들은 오지 않고, 썰렁한 객실을 둘러보며 분향하고, 조문을 한다.
 
"너는 이제 지금 부터 누나 말을 잘 들으야여..."
"예..예.."
"어떻게 된 일이냐?"
 
자고 나서 아버지가 안 좋다고 하더니, 쪼끔 있다 보니까. 쓰러져서 일일구 불렀어요. 병원에서는 이미 살아 있지 않았대요.
 
지난 가을 부터는 .
 
지난 해, 가을이 다가고 감사절이 가까왔을 때 부터, 그는  교회로 와서 아무도 보지 않게 다녀간다. 성탄절에는 팥죽 잔치하는 데다 노인들 대접하라고 귤을 두 박스 오토바이에 싣고 와서 놓고 간다. 사람들 보지 않을 때, 그렇게 하는 것이다. 누가 갖다 놨는지 몰라서 한 참을 궁금하던 중에 , 한 달이나 지나서야 그가 갖다 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목사님, 나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로 가고 싶어요."
 
몇년 전에 병원에서 치료 받을 때, 병실을 찾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려 , 걱정하지 말구, 아무데라도 좋으니, 갈만한 교회를 찾아서 가 면 좋지. 자기의 과거를 다 숨기고 싶어서 하는 말에는 진심이 들어 있었다. 그 후로 멀지 않은 교회로 나간 다는 말을 듣게 된다.
 
화려했던 젊은 날은 다가고 오십을 넘어서 육십이 다 되었을 때, 모든 걸 다 맡기고 의지하던 아내는 어디로 가출하고, 혼자 된 사람이 그 남겨진 빚 처리하먼서 무슨 낙이 있나. 너무 하다 싶었다.
 
가끔 소나무를 그려 가지고 오면 벽에 걸어 주었다. 본인은 이 그림이 명작인 줄 알고 애지 중지하니, 나도 따라서 그렇게 애지 중지하는 수 밖에 없다. 그가 동양화를 시작한 것은 청송에서부터였다. 잘 그렸다고 같이 편들어 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거가 그린 거 보다 더 좋다고 , 야  참말로 저 참새가 와서 앉으려고 하네.  큰 소리로 위로해 준다.
 
그러던 중에 겨울이 되자  주일마다 김을 몇 박스를 가지고 와서 노인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놓고 간다. 예배드리는 시간이면 사람들 보지않는 뒤에 와서, 유아실에서 가만히 있다가 끝나기 전에 간다. 어느날은 어리굴젓을 몇 병 가지고 와서 주고 간다. 오찬을 같이 하자고 하면, 한사코 사양하고 그냥 간다. 집에가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간다.
 
"목사님, 내가 교회에 가거든 사람들에게 아무개 교회 왔다고 인사시키지 마시야유."
 
그러더니, 몇주 전부터는 예배당 뒷좌석에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 헌금봉투에다 감사합니다. 주님.  김 아무개. 글씨를 써서 올리기도 한다. 그렇게 몇주가 지나고 저 지난 주에 헌금 봉투는 빈 봉투여서 의아하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발인예배, 혼자서 찬송부르다.
 
이제 한 시대를 주름 잡던 두목을 메고 나가는 시간이다. 아침 여덟시 반. 출상을 준비하는 가족들과 함께 빈소 앞에 둘러 앉는다. 간단한 경위 설명을 하고 찬송을 부른다. 아무도 같이 부르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 남매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고, 형제들은 다 객지에 살고 있으니, 나를 알만한 이도 없다.
 
나 가나안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중한 짐을 벗어 버렸네
죄중에 다시 방황할 일 전혀 없으니 저 생명시내 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내갓에 살겠네
 
혼자 부르는 발인 예배 찬송은 너무 딱하다. 힘들게 부르고 요한복음을 읽고 마친다.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삼십년 가까이 공들여서 믿게 된 사람이 이렇게 되다니,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허망한 일이다. 장례식장에서 오는 길, 옆에는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출처 : 한국기도교장로회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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